어떻게 살 것인가?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송담(松潭) 2017. 12. 21. 12:28

 

버킷 리스트(Bucket List)

 

김종복

 

 

 

 한 번 봤으면 좋겠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온 선배에게 문병을 갔다. 10년 전에 생존 확률이 낮다는 췌장암을 강인한 신념과 정신력으로 이겨낸 후에 선배는 철저히 건강 수칙을 지키며 살아왔다. 완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다른 곳에 또 암이 발생했다고 했다. 항암 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전 번처럼 병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했다. 살 수만 있다면 그래도 한 3년 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삼년 소리를 듣자니 90 평생에 처음으로 여수 바다를 구경하고 돌아오던 곡성의 두 할머니들이 다큐멘터리 TV에서 나누던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 한 3년 만 더 살면 좋겠지.”

 

 시한부에 서 있는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불가능한 그 3년의 삶이 만약 주어진다면 정말 무얼 하고 싶을까? 그 질문을 나에게도 물어 본다. 나는 3년 전에 무엇을 하고 싶었나? 자신에게 물어보니 딱히 하고 싶었던 일도 없었고 또 만족하게 한 일도 없다.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들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니 귀한 3년 허송세월 한 것 같아 부끄럽다.

 

 초등학교 때 미래의 소원을 써보라는 글짓기 시간에 나는 이런 요지의 글을 쓴 것으로 기억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일을 얻어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예쁜 자식들 키우며 그림 같은 집을 지어 그곳에서 건강하고 재미있게 부모님과 함께 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 누구나 원할 수 있는 평범한 소원인 어린이 글이었다. 하지만 순진한 그 소원들을 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나리라 식의 점괘처럼 지금의 형편과 맞추어 보면 얼추 들어맞는다. 유치하지만 나름대로 골똘히 생각해서 글로 옮기고 그 소원을 기본 신념으로 가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우물쭈물 소원을 미루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샘플 영화가 있다. 제목은 '버킷 리스트(Bucket List)’이다. 부자와 평범한 회사원, 두 노인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평생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죽기 전에 해보자며 병원을 탈출하듯 나와 세상 속에서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다 해본다. 스카이다이빙, 파리 고급 레스토랑의 식사, 만리장성에서 오토바이 질주, 아프리카 사파리 모험, 인도 타지마할 방문, 일몰의 이집트 피라미드 바라보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보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낮선 사람 도와주기, 정말로 장엄한 것을 목격하기, 기타 등등. 거의 다 해봤는데도 왠지 그들은 허허로운 심경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결국 버킷리스트의 0순위는 자기를 위한 기쁨 보다는 가족과 함께하는 사랑의 기쁨임을 깨닫게 된다.

 

 버킷 리스트의 두 주인공들이 피라미드를 보러갔다가 알게 된 고대 이집트인의 종교관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가는 입구에서 묻는 두 가지의 질문이 있다. 하나는 "너는 삶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또 하나는 남을 기쁘게 해주었는가?" 이다. 94세에 세상을 뜬 조지버나드 쇼는 장수를 했고,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했다. 그가 남긴 업적으로 보면 전혀 우물쭈물 산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라는 비문을 남긴 것은 열심히 산다고 했지만 남을 기쁘게 하는 삶은 못 되었구나하는 겸손한 자기비판의 탄식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3년을 더 살고 싶었던 선배는 3개월을 못 넘기고 임종을 했다. 문상을 간 자리에서 맏딸에게 고인의 3년 소원을 말했더니 딸도 들었다고 했다. 행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 할리 오토바이, 산악자전거, 사진. 수석, 오지 여행, 수상 스키, 낚시 등등. 당신 좋아하는 일들은 다 해보았는데, 시한부 병상에서 지나 온 세월을 돌아보니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너무 적었다.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온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3년을 더 소원 했지만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다.

 

 문상을 하고 돌아오면서 내가 살아 있을 날을 헤아려본다. 남은 세월을 시한부의 시간처럼 귀하게 생각하면서 내가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은밀하고 치밀하게 구체적으로 계획해봐야겠다. 나를 기쁘게 하고, 남을 기쁘게 하는 착한 버킷 리스트를 꼼꼼히 만들어 남은 인생을 우물쭈물 말고 진하게 똑바로 살고 싶다. 사람은 본래 이기주의 인자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이 어쩌면 살면서 가장 실천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남을 기쁘게 하는 것도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죽어서 가는 저승길 입구에서 너는 네 자신과 남을 기쁘게 하였는가?" 물음에 당당히 나는 '예' 하고 싶다.

 

 가족과 저녁 외식을 하고 집으로 올라가는 승강기 안에서 함께 탄 중학생을 보고 칭찬해주었다. 어쩜 이렇게도 잘생겼니? 요즘의 아이돌(idol) 같구나!" 학생은 그냥 수줍게 가만히 웃는다. 나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도 집에 와 거울을 들여다보고 혼자 기뻐하는 자신을 지극히 잘 알기 때문이다. 남을 기쁘게 하는 작은 한건을 오늘 했구나! 내가 곧 만들 버킷 리스트를 떠올리면서 기분이 좋다.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연간사화집 2017/2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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