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우리는 당당함과 자신감을 쉽게 오해합니다. 당당함과 자신감에 선행조건이 있다고 믿는 겁니다. 일단 살이 좀 빠지고, 피부가 좋아지고, 턱이 갸름해지고, 재미있고 활달한 성격을 장착하고, 언변이 좋아지면 자신감이 생기고 당당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치 어학 시험을 볼 때 듣기, 말하기, 쓰기 모두에서 최소 몇 점 이상을 얻어야 합격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는 바로 이 생각에 반대하기 위해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를 그리고 썼습니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에는 어딘가 하나씩 모자란 친구 다섯이 등장합니다. 다섯 못난이는 한집에 모여 삽니다. 첫 번째 친구는 배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두 번째 친구는 몸이 꼬깃꼬깃 접혀 있습니다. 세 번째 친구는 몸이 물렁물렁해서 늘 피곤하고 축 늘어져 있죠. 네 번째 친구는 위아래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친구는 뭐라 설명하기도 힘든 수준입니다. 머리에 비해 팔다리가 너무 작아서 마치 거대한 공처럼 보입니다. 한마디로 모두 엉망진창이지만 이들의 일상은 별일 없이 흘러갑니다.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서 집에 모여 누가 가장 못난이인가 입씨름을 벌이곤 했죠. 그래도 즐겁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에 본 적 없는 놀라운 존재가 이들을 찾아옵니다. 바로 ‘완벽’이라는 친구입니다. 얼굴도 잘생기고 피부도 매끈한데다 몸은 쭉 뻗어 날씬하고 코도 오뚝했습니다.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길고 탐스러웠죠.
완벽이는 별일 없이 지내는 다섯 명의 못난이를 보면서 뭐든 할일을 찾으라고 재촉합니다. 쓸모없이 시간을 축내지 말고 무슨 일이든 할 생각을 하라고 소리를 높였죠. 그러자 다섯 친구는 각각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생각을 해도 모두 구멍으로 빠져나가,”
“내 생각은 죄다 주름 사이에 꼭꼭 숨어버려.”
“난 생각을 하다 보면 금세 흐물흐물해지고 잠이 와”
“나는 무슨 생각을 해도 자꾸 생각이 뒤집어져.”
“내 생각대로 하면 결국 엉망이 되고 마는걸."
이 대답을 듣고 완벽이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힐난했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아무 쓸모가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섯 친구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결코 화를 내지 않아 화가 나려다가도 구멍으로 빠져나가거든."
“나는 여기 주름 사이사이 추억들을 가득 간직하고 있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어."
“난 모든 걸 망쳐버리지 하지만 어쩌다 내가 뭔가 해내면 정말 정말 기뻐!"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꼬깃꼬깃 접혔다. 위아래가 뒤집혔다. 맨날 망친다는 사실에서 좋은 점을 찾아내는 이 장면을 읽으며 저는 짜릿한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당당함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오해가 깨지는 느낌이었거든요. 다섯 못난이는 당당함에는 선행 조건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일단 구멍을 채우고, 주름을 펴고, 살을 빼고, 성공하고, 잘하는 게 있을 때 당당하지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태도에서 당당함이 시작된다는 사실을요.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서 좋은 면을 찾으려는 노력이 자신의 가치를 만든다는 것을 깨달은 다섯 못난이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마음으로 서로 등을 토닥이며 밖으로 나갑니다. 집 안에는 완벽이만 혼자 덩그러니 남겨집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바보가 된 기분을 느끼면서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SNS 속 완벽한 그녀를 이제 떠나보내세요. 그녀가 SNS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편집된 몇몇 순간일 뿐 실제로 부러워할만한 인생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설사 실제로도 완벽하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녀를 훔쳐보며 갖게된 높은 이상이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바뀌어 주눅들게 만드는데 계속 볼 이유가 있을까요? 완벽해지고 싶다는 기대는 우리의 발을 묶어버립니다. 그토록 바라는 당당함에 가장 방해가 되고 있는 건 바로 그 기대, 자신을 향해 들이민 높은 잣대가 아닐까요.
최혜진 /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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