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문명의 추위 이기려면

송담(松潭) 2017. 11. 11. 13:42

문명의 추위 이기려면

잃어버린 집단 지성부터 회복해야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문명의 추위라고 정의하셨는데요. 그걸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살림은 부유해졌는데 마음은 오히려 예전보다 가난해 졌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열심히 일하면 잘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니까 혼란에 빠진 거죠. 희망의 봄 노동의 여름, 수확의 가을을 지나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힘든 시기예요. 문명의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선 집단 기억을 나누고 그 안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게 첫번째예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죠? 불편하고 좁은 달동네에서도 이웃과 사이좋게 지냈는데, 지금은 편한 아파트에 살면서도 층간 소음 때문에 살인도 하잖아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에요. 아프리카 산족들은1만 년 가까이 마을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집을 짓고 광장 쪽으로 문을 내 공동생활을 했는데, 최근 화폐가 들어오면서부터 바깥쪽으로 문을 내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서로 살림살이까지 훤히 알며 가족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이젠 완전히 남남이 된 거죠. 공동체가 붕괴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 사회가 가장 많이 잃어버린 것, 그리고 시급하게 되찾아야 할 것은 생명 존중과 사랑이에요.

 

 아이가 배고프다고 엄마 젖을 무한대로 먹는 건 아닌 것처럼 인간의 물질적 욕망은 한계가 있어요. 욕망을 물질로 채우지 말고 정신으로 채워야 합니다. 욕망이라는 게 정신의 허기거든요. 게 정신의 허기거든요. 아이들 키우는 것만 해도 그래요. 가만히 내버려두면 충분히 행복한데 '엄친아'니 뭐니 해서 자꾸 남과 비교하니까 불행지는 거예요. 왜 아이들이 커서 모두 의사, 변호사가 돼야 합니까. 하워드 라인골드라는 미국 테크놀로지 분야의 대가는 자신의 책 서문에서 내가 어려서 그림에 색칠을 할 때 선 바깥으로 나가도 야단치지 않았던 우리 어머니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죠. 엄마들이 자녀가 일류 대학 좋은 과에 들어가라고 닦달하지 않고 밥을 굶든 말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도덕만으론 부족하지 않을까요?

 남들보다 경쟁력도 있어야 하겠고, 스펙도 중요하잖아요.

 

 스펙이란 말은 전자제품의 사양을 뜻하는 'specification'에서 유래한 거예요. 기기의 특성은 어떻고 메모리는 얼마고 하는, 그걸 사람에게 쓰고 있으니, 인간이 전자제품이 된 거예요. 옛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생명화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생명이 있는 것도 물질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만 해도 하늘에서 비가 오면 비가 오시네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놈의 산성비하면서 귀찮아하지 않습니까. 물질적인 빈곤도 재앙이지만 모든 걸 물질화하는 것이야말로 재앙이에요. 칼 폴라니라는 학자는 현대의 비극은 상품화할 수 없는 것을 상품화하는 데서 시작됐다고 했죠. 생명을 상품화하고 당을 상품화하고, 아이들 기를 쓰고 공부시키는 것도 결국은 상품화시키려고 하는 것 아닌가요. 소유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시각으로 보면 우리 모두 부자예요. 아침에 일어나 해돋이를 보고 새소리를 듣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그런데 이런 걸 상품화하면 모두가 불행해지는 거죠. 이것만 알아도 인간이 그렇게까지 비참해지지 않을 텐데, 지금까지 생명을 물질화했는데, 이제부터는 물질을 생명화해야 합니다. 루이뷔통 핸드백보다 어머니의 손때 묻은 가방이, 남의 손에 끼워진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남편이 결혼할 때 준 실반지가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달으면 지옥이 천당이 됩니다.

 

 이어령 / ‘지성에서 영성으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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