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의 권세
입버릇처럼 “미쳐, 내가 미쳐”하는 분이 있다.
그분이 머지않아 정말 미칠까 봐 때로 걱정이다.
“힘들다. 힘들다..., 짜증난다. 짜증난다.”
매일 입으로 말하는 이가 있다.
심지어 “못살아, 내가 못살아”도 적지 않다.
그렇게 매일매일 주문을 걸어대면 정말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간절히 매일 주문을 걸어대면
가엾어서라도 하늘이 도와주실 것 같다.
네 말대로 하겠다고, 그렇게 원하니 들어주겠다고.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도 있고,
성경에는 ‘혀의 권세’를 말한다.
‘말에는 영혼이 있다.’는 고토다마 언령사상은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강조한다.
나는 오늘 무슨 말을 주로 많이 했을까.
어쩌면 그 말이 내일의 나를 만들지도 모른 채
참 겁 없이.
시작을 대충 한 대가
오래전에 본 보스톤의 어느 병원의 직원 매뉴얼. ‘매일 샤워를 해야 하며, 손발톱은 짧아야 하며, 머리는 단정해야 하며....’하나하나 세세하고 정확하게 적혀있었다.
그러는 그들은 마무리도 깔끔하다.
“너와 함께 일한 시간은 참 좋았어. 그런데 네가 매뉴얼의 규칙을 다섯 번 어겼기에 너는 해고 대상이야. 나도 섭섭하지만 미안해.”
한편,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에 너무 관대하다. 다 좋다 좋다 하며 대충이다. 그러다가 분쟁이 생긴다. 규칙은 오간 데 없고 말싸움만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서로 자기가 맞고 상대가 잘못했다고 우긴다. 이건 다 시작을 대충 한 대가다.
면접 때는 뼈를 묻겠다더니, 좋은 회사인 줄 알고 취직했는데 다니다보니 여기가 아니란다. 괜찮은 사람 같아서 결혼했는데 살아보니 진짜 이건 아니란다. 시작을 대충하고 훗날 우리는 참 말들이 많다.
뭔가 큰 결정을 하기 전에 해야 할 것은 ‘두 눈 크게 뜨는 것’이다. 그렇게 제대로, 다, 속속들이 잘 봐야 한다. 그러나 뭐든 결정하고 나서 그때부터 두 눈을 크게 뜨기 시작하면 인생은 불행의 연속이다. 결정했다면 지금부터는 한 눈을 지그시 감아야 한다. 그렇게 반만 보아야 한다. 그래야 덜 아프다.
시작은 분명하게 하나하나 따져 묻고
과정은 너그럽게 다 이해하고.
주지 스님
땅끝마을 해남의 미황사 주지 스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뭘 많이 주어야 ‘주지 스님’이라고.
밥‘주지’, 마음‘주지’, 선물‘주지’...
나는 오늘 누구에게 무엇을 주었나.
그가 고마운 이유
피아노를 배울 때 이렇게도 연습하고 저렇게도 해봤었다.
운동을 하면서도 ‘이렇게 해보니 공이 잘 들어가는구나.’했었고,
자전거 배울 때도 ‘이렇게 하면 넘어지는구나. 아, 이렇게 하니 넘어지지 않는구나.’했다.
산다는 건 그저 이런저런 연습의 연속이 아닐까.
이렇게 하면 아프다는 걸 알게 되는 것.
이렇게 하면 조금은 낫다는 걸 오늘 알게 되는 것.
어떤 역할로든 오늘 내게 나타나준 그가 고마운 이유다.
신은 선물을 주실 때 꼭 ‘시련’이라는 보자기에 사서 주신다고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 혹시 신의 선물은 아닐까.
왜 사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어제의 나보다 조금씩 세상을 알게 되고,
조금씩 더 나아지는 나와 대면하는 것.
그게 내가 오늘을 사는 이유다.
이종선 /‘넘어진 자리마다 꽃이 피더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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