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버린 지도자
정몽주와 정도전은 절친이었다. 5살 연상인 정몽주는 부모상 등으로 낙향하는 정도전에게 <맹자> 한 질을 선물했다(<삼봉집>·사진). 그러나 정몽주로서는 그것이 천려일실이었다. 정도전은 하루에 한 장 또는 반 장씩 <맹자>를 탐독했다. 정도전의 마음을 붙잡은 대목은 바로 맹자의 역성혁명론이었다. 맹자는 “신하가 감히 군주를 죽이고 새 왕조를 창업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는 제나라 선왕의 질문을 단칼에 자른다. “어짊과 올바름을 해치는 군주는 군주가 아닙니다. 한낱 사내(一夫)일 뿐입니다.”(<맹자> ‘양혜왕 하’) 폭력혁명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맹자는 “백성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백성이 왜 중요한가. “백성이 가장 귀하고, 군주는 가볍기 때문”이다. 여기서 맹자의 천명사상이 나온다. “하늘은 백성을 통해 보고 듣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의 뜻(天意)’은 곧 ‘백성의 뜻(民意)’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맹자는 “백성이 귀하고, 군주가 가볍기에 백성의 이름으로 군주를 죽일 수도 있다”고 했다. 정도전은 맹자의 혁명론에 고무되어 새 왕조 개창의 뜻을 굳혔다.
흔히 성선설의 맹자와 함께 성악설의 창시자로 알려진 순자는 더 지독한 대중혁명론을 개진한다. ‘주수군민론(舟水君民論)’이다. “군주는 배(舟)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전복시키기도 한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순자> ‘왕제’)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군주가 민심을 얻으면 순항하지만 민심을 잃으면 전복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1502년(연산군 8년) 한치형·성준·이극균 등 삼정승은 임금에게 감히 ‘주수군민론’을 개진한다. “임금이 후원에서 내시들하고 장난이나 치고 사사로운 잔치나 벌이고 비밀처소까지 두는데 이것이 옳은 정치냐”고 따진 것이다. 삼정승은 덧붙여 “민심이 이반된 나라는 이미 임금의 나라일 수 없다”고 다그쳤다. 총리·부총리 격인 삼정승이 따져묻자 연산군조차도 “알았다”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연산군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쓴소리한 신하들도 있었다는 얘기다.
지금 이 순간 욕심 많고, 어리석고, 무능한, 즉 폭군과 혼군과 용군의 면모를 두루 갖춘 지도자와 주변의 간신배들을 어찌할 것인가. <춘추좌전>은 장탄식한다. “하늘이 버린 몸을 누가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겠는가(天之所廢 誰能興之).” 민심의 바다에 빠진 무도한 지도자를 누가 구해주겠는가.
이기환 / 논설위원
(2016.11.23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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