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식탐
지교헌
한 달이나 계속되는 폭염 탓인지 오후가 되면 경로당에는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편이다. ‘소일거리봉사활동’에 나가는 것도 오전에 그치기 때문에 오후는 완전히 노인들의 자유시간이다. 우리는 경로당을 ‘사랑방’이라고 부르고 시골 어른들이 모여 소일하던 것처럼 오락과 잡담을 늘어놓고 간식을 즐기기도 한다. 간식비는 공동경비에서 지출되거나 회원들이 서로 다투어 부담한다.
어제는 “어서 나오세요.”라는 회장님의 친절한 전화를 받고 서둘러 사랑방으로 나갔다. 이윽고 탐스런 피자가 두 판이나 들어왔다. 한 상자가 여덟 조각으로 갈라져 있으니 모두 열여섯 조각인 셈이어서 각각 한 조각씩 손으로 집어 들고 먹기 시작하였다. 나도 한 조각을 들고 맛있게 먹기 시작하였지만 조금 늦게까지 먹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다시 한 조각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한 조각을 다 먹고 났을 때는 아직 네 조각이나 남아 있었다. 내가 또다시 군침을 삼키고 있는데 아주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것 한 쪽 더 드세요. 남는 거니까. 다른 사람 먹을 사람 없어요.”
나는 반가웠다. 내가 더 먹고 싶어서 피자에 눈을 쏘고 군침을 삼키는 모습을 지켜보던 L교장의 친절한 권유였다. 나는 못 이기는 척하고 또 한 조각을 집어 들고 피자 판에 깔린 부스러기까지 긁어모아 적당히 뭉쳐서 먹기 시작하였다. 맛있게 열심히 다 먹고 나서 둘러보니 피자 판에는 아직도 서너 조각이나 남아 있었다. 나는 배가 부를 만큼 먹었고 만족하였다. 평소에는 한 조각을 넘기지 않았는데 두 조각이나 먹었으니 예사롭지 않은 대만족이었다.
나는 땅거미가 깔릴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갔으나 저녁 식사는 거의 포기하고 말았다. 내자에게 피자 먹은 이야기를 하니 따가운 화살을 쏘아대었다. 제발 과식하지 말고 체면도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뭐가 부족하여 밖에 나가 체면을 구기고 다니느냐는 질책이었다. 엄처시하(?)에서 겪는 마땅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명심한다는 서약은 팽개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 말았다.
오늘 오후, 사랑방에 나가니 Y선생이 안부를 물었다. “속이 편하였느냐?”는 것이었다. 뜻밖이었다. 내가 걸신들린 것처럼 피자를 두 조각이나 먹어치우는 꼬락서니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던 모양이다. 그는 누구에 못지않게 식사를 잘 하는 편이고 한방의학과 건강식품의 전문가로 자처하고 많은 사람에게 인정되는 분이었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자숙하는 태도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잡념에 잠겼다.
내가 피자를 먹고 있던 모습은 하나의 연극 무대에서 연출한 작품이었던 것 같다. 남들은 대개 한 조각으로 만족하는 데도 불구하고 나는 두 조각이나 먹고, 부스러기까지 긁어모아 꾸역꾸역 혼자서 열심히, 포크와 같은 기구도 없이 손으로 움켜쥐고, 그리고 콜라를 맛있게 몇 모금이나 마시던 모습이 열흘이나 굶었을 법한 노숙자를 연상케 한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그 전날 밤, 열대야와 식도염으로 잠을 설친 데다 그 날엔 오전에 갑작스런 일로 은행을 들렀다가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버스를 타고 강의를 나갔다가 웬만큼 지쳐서 집으로 돌아 왔기 때문에 배도 고프고 피로도 느끼고 있었다. 그리하여 집에서 냉장고나 뒤지고 쉬려던 판에 친절한 노인회장의 전화를 받고 사랑방으로 달려 나갔던 것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굶주린 짐승처럼 피자를 먹는 진귀한 행동을 연출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Y선생이 ‘속이 편하더냐?’고 확인하는 것이 그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려서부터 식욕이 강한 편이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서도 고질적인 식탐을 버리지 못하는 편이었다. 젊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 아무 음식이나 가리지 않고 많이 먹는 편이었다가 늙어서는 점점 달라지긴 하였지만 아직도 과히 적게 먹는 편은 아니다. 요즘도 나보다 많이 먹는 사람을 만나기는 별로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최근엔 식사 때마다 애초에 밥을 덜어내거나 아니면 아까운 밥을 밤톨만큼이라도 남기는 버릇이 생겼지만 사랑방에서 피자를 두 쪽이나 먹던 추태(?)는 체면을 구긴 짓임이 분명하였다.
생각하면 내가 스스로 체면을 구기는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도대체 내가 팔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제대로 체면을 지킨 일이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일생을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면서 체면을 지키고 내가 부끄럽지 않게 내세울만한 공로는 무엇일까. 나는 과연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존경을 받을만한 인격과 학문적 조예와 권위를 갖추고 근무하였을까? 나는 과연 내가 받은 은혜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가정과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였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피자를 보고 혈안이 되고 꼴불견이 된 것처럼, 신성한 사명(使命)은 뒷전으로 미루고 엉뚱한 일에만 마음을 쓰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복무기간에는 마지못해 책임을 느꼈지만 이제 정년으로 퇴직한 후에는 어떠한가?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약간의 봉사활동을 하고 잡문을 몇 편 쓰는 것만으로 체면을 지킨 것이라고 만족할 수 있을까?
피자 먹기에 전력을 투구한 것처럼 나의 본연의 사명을 찾아 유종의 미(美)를 거두어야할 것이 아닌가? 피자를 두 조각이나 먹은 일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행하기도 하다. 반성하고 또 반성할 일이다.
(2016.8.29)
< 2 >
“내 탓이오‘
-강의하러 가던 날-
지교헌
모처럼 만에 공자의 ‘군자론’(君子論)을 중심으로 강의하기 위하여 참고자료를 미리 보내 놓고 기다리던 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우선 해결해야 할 일은 배변이었다. 사흘이나 걸렀기 때문에 머리도 무겁고 몸이 불편하였다. 내 딴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하였으나 몸만 피로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역류성 식도염을 치료하기 위하여 복용하는 약물이 변비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모양이다. 이것저것 찾아서 짐을 챙기다 보니 가방이 묵직하였다. 척추분리전방전위증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기 어려운 나는 가방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참고 정류장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고 모란역으로 가서 다시 지하철을 이용하여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나는 직원들과 만나 간단한 사무적인 일을 마치고 다시 화장실로 달려갔다. 한참이나 힘겨운 작업(?)을 시도하였으나 도로에 그쳤다. 강의시간은 금세 닥쳐오고 말았다.
담당직원이 나를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강의실로 안내하였다. 강의 전에 부르는 노래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맨 앞자리에 가 앉아서 ‘강사소개’를 받았다. 소개의 내용은 거창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 거창한 소개에 걸맞게 제대로 알찬 강의가 될지는 의문이었다.
나는 강의하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게 갑자기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아찔하였다. 바퀴 달린 의자가 미끄러지면서 몸은 넘어지고 뒤통수는 옆에 있는 책상에 부딪혔다. 강의실에 가득한 수강자들이 모두 놀라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나는 옆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일어나 의자에 앉아 가만히 정신을 차렸다. 한참이나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는 드디어 일어섰다. 그리고 “미안합니다.”를 연발하고 나서 간신히 매직펜을 들었다.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독행(篤行)’을 써 놓고 입을 열었다.
이어서 군자의 개념은 무엇이며 군자의 생활철학은 무엇인지 강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이라는 글귀가 나왔다. 무슨 일이 잘못되었을 때 군자는 그 원인을 자기의 잘못이나 실수로 돌리지만 소인은 그것을 남의 잘못이나 실수로 돌린다는 것으로 설명하면서 나는 내가 방금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넘어진 원인에 대하여 스스로 반성하는 자세로 말하였다. “내가 넘어진 것은 바퀴 달린 의자 때문”인 것처럼 말한 것은 바로 소인의 행동이라고. 그러자 강의실에는 긴장감이 풀어지고 웃음이 번져 나갔다. 인상 좋은 숙녀들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이 고마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소인의 행동을 많이 하면서 살아왔다. “가정환경․학교환경․사회환경이 좋지 않아서, 때를 잘못 타고나서, 사람을 잘못 만나서, 재수가 없어서, 운이 나빠서, 시간이 없어서, 건강이 나빠서, ……” 이러쿵 저러쿵 언짢은 일은 거의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남에 대하여 비난과 질책과 심지어는 폭언이나 폭력으로 공격하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널리 배우고 탐구하고 사색하고 변별하고 조심하고 근신하고 노력하고 근검하고 이해하고 충성하고 남을 존중하였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도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남을 원망하고 시기하고 증오하고 비방하고 심지어는 사실과 다르게 호도하여 급기야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원리에 따라 자신의 불행을 자초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람이나 집단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인화(人和)가 깨어지고 정의가 무너지고 살기는 점점 어려워지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일이다.
내가 강의실에서 넘어진 것도 모두 내 탓이지 결코 남의 탓이 아니다. 어디 그 뿐인가. 건강이 나빠지고 학문적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사회에 봉사하지 못하고 남에게 존경 받지 못하는 모든 것이 오직 ‘내 탓’일 뿐이지 결코 ‘남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어느 기독교 단체에서 ‘내 탓이오’라는 캠페인을 펼치고 자동차에 ‘내 탓이오’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무엇이든지 남의 탓이 아니고 나의 탓이라는 생각은 자신을 낮추고 겸양하고 남을 높이고 존중하는 것이므로 저절로 인화(人和)가 조성되고 협동이 이루어져 좋은 가정이 되고 사회가 되고 국가가 될 것으로 믿는다.
내가 강의실에서 넘어진 사실에 대하여 ‘바퀴 달린 의자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의 부주의 탓임을 자백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만일 나의 건강에 원인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건강은 남의 탓이 아니고 나의 책임임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한 평생을 살다보면 결코 내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명백한 사례도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다. 삼척동자라도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나의 책임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타인의 행동에 의하여 터무니없는 위험이나 피해를 당하는 수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과연 모든 것을 내 탓으로만 돌리고 말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인과관계를 무시하는 억지에 불과하고 반이성적(反理性的)이고 위선(僞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우리에게는 날카로운 지적 판단이 요구된다. 공자는 “남이 나를 속일 것이라는 것을 미리부터 속단하여 받아들이지 말고 남이 나를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미리부터 억측하지 말 것이니 모든 것을 사전에 먼저 깨닫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不逆詐하며 不憶不信이나 抑亦先覺者 是賢乎인저[論語 憲問篇])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공자의 말은 매우 높은 경지의 지적 능력을 요구한다.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모든 일을 먼저 깨달을 수가 있을까 하는 회의를 벗어 던지기 어렵다.
아무리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항상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내 자신을 탓하는 정신이 필요하고도 중요한 것임은 다시 말할 나위가 없다. 이리하여 나는 이제 좀 더 많이 소인의 탈을 벗고 군자의 탈을 쓰기 위하여 ‘내 탓이오’의 정언적 명법(定言的 命法)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
(201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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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클럽한국본부 회원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명예교수(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