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과 다북쑥
지교헌
사람들이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모습이 드러날 수 있고 그 가운데는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은 바로 가족의 구성원이 게으르거나 도박이나 주색에 빠지거나 쓸데없이 남과 다투거나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하여 말썽을 일으키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 때 나머지 가족들은 속이 상하지만 그 속내를 겉으로 나타내거나 남에게 말하기도 어려워서 속으로만 끙 끙 앓기도 한다.
가정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가정에 유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회나 국가에도 유익하지 못하다. 그들은 자신의 가정만 해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미풍양속을 해치고 국법을 어기기도 하며 남에게 정신적 물질적 손해를 끼치거나 나아가서는 남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빼앗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가정에나 사회에나 국가에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지극히 해로운 사람도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날이면 날마다 대중매체에 오르내리는 사건사고들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도움이 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매우 해로운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들이다. 그러나 그 장본인들은 그것을 인식하는지 못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때도 많다. 그리고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모두 공부하지 않은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고 오히려 공부를 많이 하고 사회적으로도 안정되고 심지어는 존경을 받는 사람인 경우도 매우 많다. 다시 말하면 남에게 본보기가 될 만 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남의 지탄을 받거나 법의 심판을 받는 수가 자주 있는 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선의에 따른 실수가 아니라 고의에 따른 중대한 범죄임이 드러날 때 국민들은 실망하고 그들을 원망하고 증오하고 저주한다.
‘학자는 곡식이나 벼와 같고, 불학자는 다북쑥이나 잡초와 같다’(學者如禾如稻 不學者如蒿如草)하고, 이어서 ‘곡식이나 벼는 나라의 좋은 양식이요 보배이지만 다북쑥이나 잡초는 농부가 혐오하고 김매는 자가 번뇌한다’는 말이 있다.(<明心寶鑑> 勤學篇).
여기서 말하는 학자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고 불학자는 그 반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공부한 사람들은 많아도 진정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다. 지식인이 저지르는 부정부패를 비롯한 여러 가지 범죄가 만연한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혜택으로 공부하여 출세하고 나서는 그 은혜를 갚으려하지 않고 오히려 반사회적 언동을 일삼거나, 사리사욕이나 부정부패나 방탕이나 반사회적 향락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많이 발견된다.
오늘날의 지식인 사회에서 보면, 전통사회에서 초학자들이 읽던 <명심보감>과 같은 책은 그 수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을 읽고 내용을 제대로 깨우치고 실천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소학>(小學)이라는 책도 마찬가지로 철모르는 소인(어린이)들이 학문으로 들어서기 위하여 배우는 지극히 초보적인 생활의 원리요 실천요령을 공부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광조(趙光祖) 이장곤(李長坤) 김안국(金安國)과 같은 훌륭한 학자를 길러 낸 조선시대의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은 평생을 ‘소학동자’(小學童子)로 자칭하면서 가장 기초적인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고자 노력하였다고 전한다. 소학의 실천이 곧 일생의 좌우명이었던 것이다. 참된 생활의 지혜는 결코 멀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가까운 곳에 있음을 보여준다. <명심보감>이나 <소학>은 영원한 인류의 지침서이다.
하나의 지역사회나 국가뿐만 아니라 인류사회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온 인류가 서로 교통하고 협력하고 공영(共榮)하려고 애쓰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이해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인종간의 편견이나 문화의 차이나, 이념이나 신앙이나 가치관의 차이는 때때로 대립하고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은 여러 가지 갈등을 조성하고 개인으로 하여금 처신하기를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주어진 환경과 처지에서 냉철히 판단하고 행동하는 데는 넓고 깊은 통찰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이제 내 나이 너무 많아 직장에서도 은퇴하고 난 오늘날, 덧없이 흘러간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나는 얼마나 곡식이나 벼와 같은 나라의 보배로 살았으며 지금도 살고 있는지, 아니면 다북쑥이나 잡초와 같은 골칫거리로 살았으며 지금도 살고 있는지 스스로 살피게 된다. 곡식이나 벼처럼 나라의 식량이 되지는 못할망정 다북쑥이나 잡초처럼 나라에 골칫거리나 되지 않도록 모든 국민이 반성하고 크게 깨우쳐야 할 것이다.
(2016.9.14)
<지교헌>
한국문협, 국제PEN클럽한국본부 회원
<월간수필문학>추천작가회, 한국경기수필가협회 회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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