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고독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일을 해낸다
고독의 밑바닥까지 추락했기에
가능했던 일
미국의 제이콥 A 리스는 1800년대 후반 뉴욕 빈민가의 처절한 풍경을 필름에 담아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 사진작가다. 그는 평생 고되고 궁핍한 삶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도시 빈민층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사진들을 발표하여 물질 중심의 산업사회로 치닫는 세상에 경종을 울렸다. 또 무분별한 소비를 일삼고 단번에 부자가 되려는 한탕주의에 빠진 이들의 각성을 촉구하며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현실이 힘들 때마다 석공이 망치로 바위를 백 번 때려 금이 가게 하는 것을 구경한다. 바위가 백 번째 망치질로 인해 둘로 갈라졌다면, 나는 그것이 마지막 한 번의 망치질 덕분에 그렇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필시 그의 모든 망치질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형태의 바윗덩어리를 얻기 위해 수백 번 두드리는 석공의 모습이 떠오른다. 목표하는 것에 이루기가지 외롭게 견디고 기다리며 두드리는 작업을 계속하는 석공의 모습에서 장인의 고독을 읽을 수 있다.
인생이란 멀리 보이는 하나의 목표 지점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부축해줄 수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끝가지 완주해야 한다. 온전히 혼자 힘으로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여기, 자기 삶의 단 하나뿐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백 번 아니라 천 번 만 번 망치질을 한 사람이 있다. <사기(史記)>를 지은 고대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그 사람이다. 나는 지금 그의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다. 그에게는 수염이 없다. 남성의 상징을 거세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왜 이런 치욕적인 징벌을 받았으며, 그럼에도 왜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역사책을 남겼을까?
한(漢)나라 무제 때 이릉(李陵)이라는 장수가 흉노를 징벌하러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서 열흘 동안 싸웠는데 중과부적으로 대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전투에서 패해 전사한 줄로만 알았던 이릉이 흉노족에게 투항하여 공주와 결혼까지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에 무제가 당장 한나라에 남아있는 그의 일족을 참하라고 명했는데, 이때 사마천이 홀로 나서서 아뢰었다.
“소수의 군사로 수만 명에 달하는 오랑캐와 싸우다 투항한 것은 훗날 기회를 노려서 반드시 황은에 보답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 사정을 알아보고 처형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에 진노한 무제는 사마천을 당장 옥에 가두고 생식기를 잘라 없애라는 명을 내렸다. 이를 ‘궁형(宮刑)’이라고 하는데. 그 시대에 남자가 당할 수 있는 형벌 중에서 가장 치욕적인 징벌이었다. 후에 사마천은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서 보냈다.
내가 처형을 당해도 아홉 마리 소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터럭 하나쯤 없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을 테니, 나 같은 사람은 땅강아지 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럼에도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세상은 나를 졸장부라 비웃겠지.
이 글만으로도 사마천이 당시 겪었을 어마어마한 고독이 느껴진다. 세상 밖으로 내쳐졌다는 절망감,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지 않는 가혹한 고립 속에서 그는 졸장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죽지 않고 기어이 살아남았다. 그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징역은 죄인을 고독하게 만들기 위한 제도다. 죄인을 사회와 격리함으로써 혼자만의 세계에서 ‘너 자신을 돌아보라’고 엄중하게 명령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마천은 그런 징역도 모자라 생식기를 제거 당했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그렇게 만든 황제 밑에서 환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사마천은 아홉 마리 소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터럭 하나쯤의 신세로 전락하고서도, 모든 치욕을 딛고 일어서서 끝내 불후의 명저인 <사기>를 완성했다. 그 위대한 작업은 고독의 밑바닥까지 추락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궁형을 당한 뒤의 신세를 한탄하는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데, 특히 얼마나 혹독한 감옥살이를 했는지 포졸들의 목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멎을 정도로 덜덜 떨었다고 한다. 한때는 황제에게 직간을 할 정도로 당당한 선비였는데 시련 후에는 비루하고 나약한 인간이 되고 만 것이다.
인간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손자병법>에 ‘용기와 비겁은 기세이고, 강인함과 나약함은 형세에 따른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인간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 용기와 비겁, 강함과 약함이 나타난다는 지적이 날카롭게 들린다.
비참한 상태에 빠진 사람이 비겁하게 행동하면 사람들은 비웃으며 손가락질을 한다. 하지만 손자의 말처럼 우리는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박에 없다. 사마천은 죽음의 문턱에서 한없이 비루해진 자신을 한탄하면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나 중국 역사상 최고의 걸작을 남겼으니 진정으로 고독한 승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을 벽으로 만드는 사람
벽을 문으로 만드는 사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문을 벽으로 만드는 사람과 벽을 문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이다. 강인한 사람에게 벽은 단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어야 할 문일 뿐이지만, 나약한 사람은 문을 벽으로 여기면서 그 앞에 주저앉아 버린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사마천은 누구보다 고독한 사람이었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궁형을 당한 후에 이뤄낸 업적만 봐도 그렇다. <사기>의 규모는 본기(本紀) 12권, 연표(年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 등을 합해서 총 130권에 이른다. 이는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개인이 이뤄낸 가장 방대한 분량의 저작으로, 사마천은 책을 펴내면서 저술의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문의 전통인 사관의 소명의식에 따라 <춘추>를 계승하고 아울러 궁형의 치욕에 발분하여 입신양명으로 대효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사마천의 아버지는 전한(前漢) 시대의 역사 편찬 담당자였는데, 중국 역사를 기록한 책을 짓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되자 아들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역사책 집필을 완수하라고 유언했었다. 한편 <춘추>는 공자가 노(魯)나라 사관이 지은 역사서에 자신의 글을 보태 다시 편찬한 역사서로, 사마천은 <사기>를 집필하면서 공명정대와 대의명분을 중시한 공자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다.
작가의 고통이 독자의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핏빛 고독으로 얼룩진 사마천의 삶이 바로 그렇다. 하지만 사마천을 통해 우리는 가장 고독한 인간이 가장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당신이 지금 고독에 몸부림치고 있다면, 이 말로부터 용기를 얻기 바란다. 아무 할 일 없이 빈둥대는 걸 고독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고독을 낙오나 실패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고독한 사람은 패배자가 아니라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켜 승리자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외로움과 고통의 시간을 딛고 일어나 최고의 인간으로 변신한 사람들은 그 밖에도 많다. 누구보다 외로웠고 누구보다 힘든 세월을 감당해야 했던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투덜대거나 징징거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헬렌 켈러는 자신의 불운을 원망하는 대신 자기 삶에 쏟아지는 고독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드렸다. 음악가에게 생명과도 같은 청력을 잃고서도 베토벤은 더 노력하여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어쩌면 고독은 성공을 방해하는 벽이 아니라 성공을 이루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바탕인지도 모른다.
원재훈 / ‘고독의 힘’중에서
* 인간은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살지만 자의든 타의든 혼자 있을 때,
고독 하다고 느낄 때, 더욱 성숙해 지고, 나아가 뭔가를 이룩 할 수 있는가 봅니다.
우리 문학사에 만리 장성과도 같은 기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토지"를 완성하고 난후
박경리씨는 글을 쓰는 내내 "사마천"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박경리의 '사마천'이라는 시입니다.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 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썻던 사람
육체를 거세 당하고
인생을 거세 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 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 운암선생님께서 보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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