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세월이 나를 예술가로 만든다

송담(松潭) 2015. 8. 11. 17:22

 

세월이 나를 예술가로 만든다

 

 

 

 우리는 언젠가 생명을 마감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심리반응이 골치 아픕니다. 죽음이 멀리 있다 느껴지는 젊은 시절엔 아무도 죽음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평생 죽지 않을 존재로 여기며 삶을 흘러 보내기 싶습니다. 반면,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죽음에 대해 너그러이 받아드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합니다. 삶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지는 것을 어르신들의 심리에서 봅니다.

 

 임상 경험을 통해 노화 과정의 심리변화에 깨닫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당사자 입장에서 호상은 없다는 것입니다. 망자를 떠나보내는 가족들이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호상이라 말하는 것이지 본인이 아 호상이다하며 눈을 감는 이는 없습니다.

 

 나이 들수록 삶에 대한 애착은 커져만 갑니다. 삶이 소중해지는 것입니다. ‘살만큼 살았다는 어르신들의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80세 어르신께 얼마나 더 살고 싶으신지 여쭤보면 뭘 더 살아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또 여쭤보면 남들 사는 만큼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그게 몇 세냐고 물으면 120세라고 답하시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또 다른 변화는 순수한 가치에 대한 열망이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꽤 성공하신 70세 어르신이 불면증으로 상담을 했습니다. 스트레스 증상을 치료해 주었더니 이제 불면증은 치료됐으니 진짜 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소라고 하시더군요. 그게 무엇인지 여쭤보니 나 요즘 너무 사랑을 하고 싶어라고 말하십니다. 사랑은 젊은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70세 넘어 만난 분들이 때론 젊은이보다 더 열렬히 사랑합니다.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도 있지 않는가요.

 

 우리가 성공을 위해 열심히 사는 본질적인 동기가 무엇일까요? 나를 근사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왜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을까요더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픈 무의식의 욕구가 강력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그 본질적 욕구가 더 강렬히 작동합니다.

 

 삶에 대한 애착과 순수한 가치에 대한 열망이 커지는 심리 변화, 그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삶을 더 잘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실제 어르신들을 보면 분노 반응이 증가하고 쉽게 슬픔에 잠깁니다. 왜 그럴까요? 진짜 마음과 가짜 마음을 구분하는 감성 판별 능력이 더 예민하게 발달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명절 때 작년과 같이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왔는데, 부모님은 왜 나를 진짜로 공경하지 않느냐고 역정을 내시니 자식들은 황당합니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커진 반면, 상대방이 보여주는 애정의 진정성에 대한 예민도는 증가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중증 치매가 되어 며느리인지, 딸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뇌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서도 자기 주변의 사람 중 누가 나를 진심으로 위하는지 정확히 압니다. 그 사람하고만 있으려 합니다. 사랑의 욕구는 커지지만 진짜 사랑이 아니면 감동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15세기 이탈리아 미학자 알베르티는 인간은 불멸의 신 같은 이성과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중년이 없다면 그건 결코 없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40세 이후 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중년이 인류 문화와 역사 창조의 주역이라는 이야기인데 다른 영장류보다 훨씬 긴 노화 과정을 겪는 사람의 특징이 다른 영장류에겐 없는 문화를 창조 계승하는데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일까요?

 

 중년의 진화심리학적 정체성을 분석한 미국의 동물학자 베인브리지의 의견이 흥미롭습니다. 중년에 머리가 빠지고 배가 나오며 성기능이 약화되고 폐경이 오는 것은 젊은이들과 섹스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닌 중년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한 변화라는 것입니다. , 문화에 대한 몰입과 그 문화를 젊은 세대에게 대물림하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도록 하는 진화론적 결과물이란 이야기입니다. 진화가 오직 생식에만 집중해 있는 다른 영장류와는 달리 사람은 생식과 별도로 문화의 창조와 계승이라는 본능적 욕구에 충실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무뚝뚝한 남자가 예술가의 섬세한 마음을 갖는 것도 노년의 심리 변화입니다. 감성 예민도는 점점 증가하고 심지어 치매에 걸려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억력 같은 인지 기능은 떨어져도 감성 시스템의 예민도는 증가하는 것도 문화에 대한 몰입을 증가시키기 위한 노년의 변화인 것입니다.

 

 노년의 외로움과 슬픔은 내가 예술가가 되었다는 증거이고 그 감성을 세상과 연결해 즐길 수 있다면 젊은이보다 세상의 아름다음을 더 느낄 수 있는 것이 노년이라고 과학은 이야기합니다.

 지금,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윤대현 /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공무원연금 2015.8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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