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시(適時)의 삶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를 통해 “불시에 끝나는 삶에 맞서라, 그리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맞으라.”라고 했다. 한 마디로 ‘제 때에 죽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적절한 죽음의 시간을 망각한 인간들에게 전하는 니체의 조언이다.
삶에는 ‘적시(適時)’와 ‘불시(不時)’가 있다. 오늘날 인간들은 적절한 시간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적시의 자리에는 불시가 대신하고 있다. 그러므로 제때에 죽는 사람이 드물다. ‘불시’에 죽음의 그림자가 덮쳤다고 말하는 까닭이 그것이다.
나는 불시에 끝나버리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 삶 자체를 적극적으로 구성하여 ‘완성하는 죽음’을 위해 살려고 한다. 삶의 찰나도 늘 적시에 놓아두려 한다. 그래서 항상 ‘불시성’을 삶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내게 있어 ‘시간’은 ‘적시’로 바꾸어 죽음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연금술이다.
400년 전 피렌체 사람들은 누구나 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망원경을 가진 사람은 오로지 한 사람, 갈릴레오뿐이었다. 400년이 지난 지금, 누구나 망원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별을 보는 게 아니듯이 춘천에 산다고 춘천을 보는 건 아니다. 보려고 하는 자, 눈을 뜬 자만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고귀한 인생에 대해서 놀랄 줄 알아야 한다. 귀가 없이 음악을 창조한 베토벤에 놀라야 하고, 눈을 감고 <실락원>을 쓴 밀턴에 놀라야 하고, 조국을 쫓겨나 <신곡>을 쓴 단테에 놀라야 한다. 특히 ‘운명의 시간’을 복원하려는 ‘나’자신에 놀라야 한다.
‘내 속에 정의의 불이 붙고 있지 않는가. 내 속에 진리의 빛이 비치고 있지 않는가. 내 속에 생명의 샘이 흐르고 있지 않는가. 내 속에 높은 산 푸른 물이 용솟음 치고 있지 않는가. 아름다운 자연이 내 속에 있고, 알 수 없는 신비가 내 속에 있고, 끓어오르는 생각이 내 속에 있지 않는가.’
세상에 제일 신비한 것도 ‘나’이고, 세상에 제일 신통한 것도 ‘나’다. 깨어서 우주를 살피고 자면서 세상을 감싸는 것도 바로 ‘나’다. 무릇 ‘나’자신에 놀란 사람이 ‘나를 아는 사람이며,’나‘를 아는 사람이 적시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다.
< 2 >
그의 직장은 언론사였다. 아내도 있고 공부 잘하는 아들과 딸도 있다. 종가집의 장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마흔이 조금 넘은 나이에 회사를 그만 두었다. 퇴직금으로 받은 일체를 아내에게 던져놓고, 그는 세상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동가숙서가식 하면서 산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지만 그의 노동행위는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살아있음으로 하는 ‘생명’행위로서의 노동이고, 많거나 적거나 감사함으로 받아 적절하게 그리고 아낌없이 쓴다.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눅6:20)”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복이라는 말씀이 아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은 그대로 가난이다. 복이 있다는 의미의 가난은 삶의 형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가난하게 사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이다. 세상엔 많이 갖고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적게 갖고도 가난하지 않게 사는 사람이 있다.
< 3 >
어느 때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나쁜 남자’를 유행처럼 선호하고들 있다. 어느 때는 다정하고 다감하여 한껏 부드러운 남자가 값이 나가더니, 예쁘장한 남자, 배 근육이 멋진 남자, 허벅지 굵은 남자로 흐르다가 이제는 ‘나쁜 남자’란다.
이런 대중문화 콘텐츠는 인간의 은밀하고 사악한 것에 대한 호기심을 노골화할 뿐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는 악인을 예찬하는데 까지 이르고 있다. 그동안 억눌려 왔던 사악한 본성이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형국이라 할까. 사실 그동안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탐구가 부족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렇게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사전 지식이 모자라기 때문에 영화에 등장하는 악역이 심지어는 참신하다고 믿거나, 구원자와 동일시하는 호소력을 지닐 수도 있게 된다.
봇물을 이루는 ‘나쁜 남자’의 사회기류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고 읽어내야 하는 것은, ‘착한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라는 사회적인 통념의 고착이다.
허태수 / ‘내 생각에 답한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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