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하나의 변화일 뿐
반야심경에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생하고 멸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고 것도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바다에 가면 파도를 볼 수 있습니다.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또 일어나고 사라지지요. 그런데 바다 전체를 보면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물이 출렁거릴 뿐입니다. 바다 전체를 보듯이 인생을 관조하면 삶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파도 하나하나를 보면 분명히 파도가 생기고 사라지듯이 인생도 언뜻 보면 생하고 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가 아닌 인식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릇에 얼음구슬을 담아놓았는데, 네다섯 살짜리 아이가 바깥에 가서 한두 시간 놀다 들어오니까 얼음구슬이 없어지고 물만 담겨 있습니다. 아이가 그걸 뭐라고 할까요? “엄마, 내 구슬이 없어졌어. 그리고 물이 생겼어”라고 하겠죠. 이때 엄마는 그 과정을 아니까 얼음구슬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물이 생긴 것도 아니고 다만 얼음이 물로 변한 거라고 말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생멸의 관점을 갖고 세상을 보기 때문에 생겼다고 기뻐하고 사라졌다고 슬퍼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전체로 보면 변화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생불멸’이라고 합니다. 즉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 변화할 뿐이라는 거예요.
숨이 끊어져 몸이 흩어지는 것이나 하루하루 세포가 바뀌는 것이나 다 똑같은 변화입니다. 지금 세포가 바뀌는 것은 소나무 잎이 새로 생기면서 그전의 잎이 떨어지기 때문에 늘 푸르다고 느끼는 것과 같아요. 또 몸이 급속도로 해체되는 것은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면서 나무가 죽어버린 것처럼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실재하는 건 변화뿐인데, 보이면 살았다고 하고, 안보이면 죽었다고 하고, 안 보이다 보이면 태어났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들의 마음도 한 생각 불쑥 일어났다가 갑자기 흩어지고 사라져버립니다. “우리 죽을 때까지 사랑하자.” 약속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생각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변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변하는 것을 봤을 때 괴로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마치 바다에서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생성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걸 깨쳐서 집착을 놓아버리면, 생겨난다고 기뻐할 일도 없고 사라진다고 괴로워할 일도 없어집니다. 그것을 직시하면 두려움도 아쉬움도 없을 텐데, 부분적으로 인식하니까 없어졌다고 생각해서 아쉬움이 생기고, 없어질까봐 두려움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늙음도 죽음도 단지 변화일 뿐임을 알고 나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법륜 / ‘인생수업’중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시(適時)의 삶 (0) | 2015.06.12 |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0) | 2014.01.21 |
삶과 죽음에 대하여 (0) | 2013.11.24 |
성공의 또 다른 잣대, 가치 있는 삶 (0) | 2013.09.08 |
왜 자살하지 않는가 (0) | 2013.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