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성공의 또 다른 잣대, 가치 있는 삶

송담(松潭) 2013. 9. 8. 19:01

 

 

 

성공의 또 다른 잣대, 가치 있는 삶

 

 

 

 

 

 지난 4~50년 동안 우리는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큼 많은 변화를 이루어냈다. 민주화 혁명과 투쟁을 통해 정치 사회적 변혁을 이루어냈으며, 경제적으로도 기적 같은 성취를 달성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아직 따듯한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숨가쁘게 살고 있다. 객관적인 통계를 보더라도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일한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노동시간 국가다. 아이들의 학습시간도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열심히 일한다. 단 며칠 동안의 휴가도 부담스럽게 여기며 공부중독, 일중독에 시달린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치열하게 삶의 전투를 벌인다.

 

 왜 이럴까? 거기에는 몇 가지 복합적인이유가 있다.

 첫째로 우리 민족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이고 냉정하기보다는 열정적인 특성이 강하다. 이성은 본질reality을 지향하고, 감성은 외양appearance에 영향받는다. 그런데 열정의 에너지는 집단으로서 역동성을 과시한다. 열정적 감성은 짧은 기간에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비이성적인 과열 경쟁을 유발하기도 한다.

 

 둘째로 우리사회는 서구의 수백 년 동안의 민주화 산업화 역사와 비교했을 때 아직 청춘기 단계에 있다. 여유로운 포용력을 발휘하기에는 미성숙한 젊은 사회인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항해 중이다.

 

 셋째로 우리가 배태한 역사적 상처들도 우리에게 여전히 사회적 우울증을 남기고 있다. 과거의 격심한 상처가 개인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듯, 우리의 엄혹한 근대 역사도 마찬가지다. 일제 식민지배의 폭정, 동족간 전쟁이 남긴 공포, 비민주적 독재체제가 가한 위협 등 쉽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지정학적, 이념적, 사회적 집단 불안증을 유발하고 있다. 상처의 치유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우리 삶의 과열 양상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언급해야 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동안 우리가 추구해 온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발전이다. 사회의 빠른 변화는 감성 충만한 열정적 민족성이나 역사적 아픈 상처와 맞물려 우리를 더욱 격심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이제 우리의 공동체는 자기중심적 초경쟁사회가 되었다. 삶의 의미를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돌아보거나, 주변의 이웃을 차분히 살펴볼 여유도 없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생존과 성공을 위해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장미빛 인생을 위해. 빛나는 성공을 위해, 우리는 끝없는 생존경쟁의 잿빛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

 

 10대에서 30대까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나이 든 세대들도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소외와 고독과 빈곤에 시달리는 노인들의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추종을 불허할 만큼 최고 선두이다. 노년의 안식이란 말은 공허한 수사가 되었다. “삶의 전투에서 패배했어!” 번쩍이는 빌딩 숲에 가린 우리 사회의 춥고 어둡고 비극적인 오늘의 풍경이다.

 

 결과우선주의, 개발지상주의, 경쟁제일주의, 점수제일주의, 외모지상주의 등 성공 지향적 가치관들이 요란스럽게 사회를 주도하고 있다. ‘오직 성공만이 행복으로 통하는 문이다라는 집단무의식에 취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성공을 위해 줄달음치고 있다. 어디에서든, 무엇에서든 일등을 향해 질주하는 사회가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이기적 탐욕을 앞세우는 성공 지향의 투쟁의 시대, 한마디로 우리 시대는 성공을 향한 광기의 시대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경쟁하는가. 왜 성공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는가. 도대체 왜 성공하려고 하는가. 개인에 따라 나름의 명분과 이유와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우리사회에서 성공의 목표는 대체로 에 집중되고 있다. ‘돈을 위한 경쟁’, ‘성공은 곧 돈이라는 의식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을 신으로 섬기는 세상, 물신주의가 팽배한 세상이 우리의 현실이다.

 

 돈과 성공을 최우선시하는 삶이 대세다. 언제 어디서나 부자되세요.”라고 외쳐댄다. 그러나 문제는 돈을 원한다고 해도 누구나 부자로 성공할 수 없는데 있다. 거듭 말하거니와 욕망한다고 해도 누구나 금메달을 따거나 세계적으로 탁월한 업적을 달성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난 없이는 진정한 삶을 얻을 수 없다. 누구든 시력이 있을 때는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두 눈을 잃고서야 무량한 마음의 눈을 얻었고 권력을 버리자 궁전 너머 온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난해져야 한다. 가치 있는 삶이란 고통스럽지만, 버리는 삶이다.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계속 단 것을 먹으면 단 맛을 잃게 되지요

 

 인간의 삶의 방식은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 대별된다. 이것을 에리히 프롬은 소유지향의 삶과 존재지향의 삶으로 설명한다. 물질적 가치 추구나 소유지향의 삶은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것이다.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자신의 존재는 빛난다. 소유적 삶의 방식은 소유하면 할수록 자신의 존재를 크게 할 수 있으므로 더 탐욕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주체는 욕망의 노예가 되고 만다.

 

 반면에 정신적 가치추구나 존재지향의 삶은 나누고 베풀고 희생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빛나게 한다. 소유적 삶은 영혼을 오염시키지만 존재적 삶은 영혼을 건강하게 한다. 비록 무소유라 할지라도 영혼의정원에 진실과 정의와 양심의 꽃이 만발한 삶을 더 가치 있는 삶이요, 더 성공적인 삶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을 둘로 나눠본다면 무사와 광대로 구분할 수 있다.” 30여 년 전 처음 접했을 때 나에게 화두만큼이나 강렬하게 다가온 말이다. 그날 이래 나는 가끔 그 한 구절을 통해 내 자신과 세상 사람들을 읽어보곤 한다. 나는 광대인가 무사인가?

 

 무사는 힘을 추구한다. 무엇이든 누구든 지배하고자 원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지 승리를 갈망한다. 권력과 돈과 지위를 쫒는다. 지시하고 명령하고 행동하는 존재이다. 무사는 군사를 이끌고 용감하게 전장으로 달려간다. 승리의 깃발을 드높이고 전리품을 싣고 개선장군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광대는 꽃잎을 뿌리고 박수를 치며 무사를 환영한다.

 

 광대는 힘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앞으로 나서기를 원치 않는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권력과 돈과 지위를 차지하는 것 말고도 세상에는 할 일이 많다고 믿는다. 사고하는 존재가 광대다. 무사는 전술에 능하나 광대는 전략을 세운다. 무사 뒤에는 광대가 있다. 무사는 세상을 움직이나 광대는 무사를 움직인다. 무사는 시대를 바꾸지만 광대는 역사를 바꾼다. 당신은 무사인가 광대인가? 무사가 되기를 원하는가? 광대가 되기를 원하는가?

 

 

 안병대 / 한양여자대학교 영어과 교수

 ‘인문학 카페 인생강의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