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기’와 ‘사랑하기’와 ‘존경하기’
사람들은 ‘좋아한다’, ‘사랑한다’, ‘존경한다’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러나 그 용법이 적절하고 올바른지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자주 있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좋아한다’는 말은 ‘좋은 느낌을 갖는다.’, ‘사랑하여 귀엽게 여긴다.’는 뜻으로 쓰고, ‘사랑한다’는 말은 ‘애틋이 여기어 아끼고 위한다.’, ‘남녀가 서로 정을 들이어 애틋하게 그린다.’, ‘동정하여 친절히 대하고 너그럽게 베푼다.’, ‘동정․긍휼․구원․행복의 실현을 지향한다.’는 뜻으로 쓰며, ‘존경한다’는 말은 ‘높이어 공경한다.’는 뜻으로 쓴단다. 여기서 세 가지 말은 때에 따라 그 뜻이 서로 겹쳐지는 경우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동시에 차이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어에서 흔히 보이는 'like', 'love', 'respect' 라는 낱말의 뜻이 서로 겹쳐지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서로 차이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나 권세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좀처럼 사랑하거나 존경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이웃과 동포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대상을 반드시 언제나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의 부모나 훌륭한 인격자나 국가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좋아하고 사랑하는 차원을 넘어서 존경하는 수가 많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대상에 대하여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살고 있다.
성리학(性理學)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따르면 사람이 어느 대상에 대하여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것은 희․노․애․구․애․오․욕(喜 怒 哀 懼 愛 惡 欲)이라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망하는(좋아하는) 감정이 어느 대상에 대하여 윤리적 타당성을 가지고 감발(感發)하는 것은 천리(天理)에 부합하는 것이요 사람의 자연스런 성품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지적(認知的) 수준에서 정의적(情意的) 수준을 거쳐 행동적(行動的) 수준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불의(不義)를 증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인식하면 그것을 실천하고자하는 감정(의지)을 갖게 되고 다시 그것을 실천(행동)으로 옮기게 된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된 바와 같이 우리는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존경하기도 한다. 존경의 대상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수준보다 한 층 높은 것이어서 종교에서는 성신(聖神)이나 성인(聖人)이 그 대상이 된다. 상경지례(上敬之禮)나 흠숭지례(欽崇之禮)나 공경지례(恭敬之禮)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좋아한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이나, ‘사랑한다’는 말과 ‘존경한다’는 말을 엄격히 구별하지 않고 쓰는 수가 많다. 이것은 언어자체의 속성이나 언어생활의 미숙에 그 원인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어느 모임에서 ‘한국의 효사상’이라는 연제로 강연한 일이 있었는데 발표가 끝나고 나서 서면질의가 들어왔다. 질의의 요지는 ‘사랑’의 뜻은 무엇이며 누가 누구에게 쓰는 말인지, ‘존경’의 뜻은 무엇이며 누가 누구에게 쓰는 말인지 밝혀 달라는 것이었다. 질의한 사람은 시간의 제약으로 답변을 들을 수 없음을 알고 서면으로 답변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질의의 동기는 흔히 젊은이들이 ‘사랑’과 ‘존경’을 엄격히 구별하지 않고 혼동하여 쓰는 것을 자주 목격한 나머지 그것을 토론하고 밝혀보려는 것으로 보였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이것은 흔히 자식들이 부모에게 하는 말이고 우리는 이런 말을 대중매체를 통하여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엄마’나 ‘아빠’라는 말도 어린이들의 말이라 제 길로 한 길 다 큰 자식들이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거니와 여기서 말한 ‘사랑’은 흔히 친구나 아랫사람이나 연인 사이에 어울리는 말이 그대로 부모에게 쓰여 진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친구나 아랫사람이나 연인과는 다른 특별한 관계에 있고 독특한 위치와 권위가 인정되는 존재가 아닌가. 따라서 “사랑해요”라는 말로는 부모의 특별한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므로 그 말의 불완전성이나 부적합성을 부인할 수 없다. 예로부터 애친(愛親)이라는 낱말이 있기는 하지만 부모는 사랑의 대상이면서도 공경의 대상이요 경애의 대상이요 효순(孝順)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부자자효(父慈子孝)라는 말과 같이 부모는 자녀를 자애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순(孝順)하는 관계에 있으므로 단순히 “사랑해요”라는 말만으로는 미흡한 느낌을 준다.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보면 부모에게 “공경해요.”, “존경해요.”, “경애해요.”라는 말을 쓰는 자식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부모를 특별히 공경(존경, 경애)하는 마음은 없고 다만 친구나 연인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 까닭은 아닌 것 같다. 예로부터 제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남을 사랑하는 것은 패덕(悖德)이요 제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남을 공경하는 것은 패례(悖禮)라고 하였는데 패덕과 패례가 너무나 예사로운 세상이 되어서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아무튼 자식은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관계에서 볼 때 ‘사랑’이라는 말은 부모가 자식에게 할 말이고 ‘존경’이라는 말은 자식이 부모에게 할 말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한다’는 말이나 ‘존경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자주 쓰지는 않은 것 같다. 직접적인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극진한지를 알고 부모에 대한 자식의 공경심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알고도 남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경지이기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극진한 사랑과 공경은 쉽사리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말이야 어떻게 쓰이든지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녀와 부모의 관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201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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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교 헌
성균관대학교대학원 문학석사, 철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명예교수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PEN클럽한국본부 회원
[동양철학과 한국사상] 외 각종 저서 논문 및 수필집 다수
* 사진출처 : 성남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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