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수필

작은 책꽂이

송담(松潭) 2014. 7. 20. 11:45

 

작은 책꽂이

 

지교헌

 

 나에겐 작은 책꽂이가 하나 있다. 가로 78cm, 세로 18cm, 높이 18cm4칸으로 구분되고 진한 갈색 바탕에 윤기가 흐르는 아담한 골동품의 모습이다.

 

 내가 먼지를 닦아 간이책상에 올려놓은 것을 본 내자는 자기의 물건인 것처럼 자기의 책을 이것저것 꽂아 놓았다. 무기력한 나는 입속으로만 중얼거리며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나의 작은 책꽂이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3십리나 떨어진 읍내(청주시내)에 있는 목수에게 특별히 주문하여 큰 형님이 혼자서 등에 지고 온 앉은뱅이책상에 딸려 온 물건이다. 그 때 큰 형님은 어깨가 몹시 아프셨을 것이고 목도 몹시 말랐을 것이다. 책상이 생기기 전에는 작은 궤짝을 대용품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새 책상이 들어오자마자 향기가 집안을 감싸고 마치 훌륭한 선비의 집안을 상상하게 하였다.

 

 나는 책상 위에 올려놓은 작은 책꽂이가 보기 좋았다. 거기에는 나의 교과서와 공책과 일기와 형님들의 고전소설 몇 권이 꽂혀 있었다. 그러나 이 작은 책꽂이는 내가 6년제 사범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의 손으로부터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고향의 어느 방구석에 잊혀 진채로 방치되어 거의 버림을 받기도 하였다. 나는 그 동안 작은 책꽂이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내 키보다도 높은 신식 서가(書架)를 여러 개 장만하여 동서양의 그럴듯한 책들을 보기 좋게 꽂아 놓고 의기양양하게 시간을 보내 왔다. 서가에 즐비한 책들은 나에게 새로운 지식과 지혜와 총명을 주었고 고뇌가 엄습할 때는 은근하고 따뜻한 위안을 주었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책을 귀하게 여기고 혹시 방바닥에 책이 놓여 있으면 절대로 넘어 다니지 않았고, 책을 읽을 때는 먼저 손을 깨끗이 씻고 바른 자세로 목례를 올리기도 하였단다. 책은 사람들에게 지식과 지혜와 교양을 전할뿐만 아니라 고귀한 인품을 갖추게 하여 남에게 존경을 받게 하기도 하고 일정한 시험이나 추천을 거쳐 공직자가 되고 권력을 행사하게도 하였다. 여러 자식들 가운데 한 둘만 공부를 하여도 그 집안이 존귀하게 되고 빈천을 면하는 수도 있었다. 그래서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는 몇 권의 책을 물려주는 것이 더욱 값진 경우도 많았다. 어떤 사람은 밭을 갈다 말고 소를 팔아 자식에게 책을 사주기도 하고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스승을 찾아 공부하게 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대도시유학이나 해외유학과도 방불한 것이었다

 

 예로부터 사람이 공부를 하는 데는 시간과 정력과 재력(財力)이 필요하고 굳은 의지가 필요하였다. 그 가운데 어떤 필요조건이 충족되지 않아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 사람도 많겠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간난신고를 감내하여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성공하면 형설지공(螢雪之功)이나 차윤지공(車胤之功)을 이루었다고도 하였다.

 

 나는 일찍이 만권당(萬卷堂, 또는 萬卷樓, 萬卷起書樓)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꿈같은 이야기로만 생각하였다. 만 권이라는 수량은 너무나 엄청난 것으로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물질의 풍요와 인쇄술의 발달로 만권당을 몇 십 배, 몇 백 배나 능가하는 거대한 도서관들이 많이 생기고, 내가 그 거대하고 귀중본이 가득한 도서관과 직접적으로 인연을 맺기도 하였었으니 세태는 많이 달라졌다.

 

 그런데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침상지학(枕上之學)이니 마상지학(馬上之學)이니 측상지학(厠上之學)이라는 말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것 같다. 공부하는 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아야한다는 말이다. 마땅히 많은 장서도 필요하지만 누워서 쉴 때나 여행을 할 때나 심지어는 측간에 갔을 때라도 나름대로의 학문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감히 털어 놓기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근년에 접어들어 점점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 동안 여기저기로 책을 흩어버리고 말았지만 아직도 나의 서재는 너무나 복잡하고 어수선하여 견디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따금 서재로부터 내 손에 끌려나온 책들의 운명은 매우 암담하다. 아무도 반겨주고 간직할 사람이 없어서 종당에는 초라한 폐품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가 특별히 서가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호흡기질환으로 외과수술을 받은 후의 일이다. 나는 오래 동안 서가에 쌓인 먼지를 호흡하면서 살아왔고 이제는 그로 말미암은 일종의 불안감을 이기기 어렵게 되었다. 서가에 쌓인 먼지는 어떻게 털어내야 하는지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지금 얼마 되지 않는 장서(藏書)나마 관리하기가 힘겹고, 집중적으로 읽을 마음과 용기가 잦아든 형편이다. 젊어서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책을 샀지만 이제는 호주머니가 넉넉하여도 사고 싶은 용기가 솟지 않는다. 몸이 늙고 병든 탓이라고나 할까, 학구열이 무디어졌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인터넷 검색창을 과신하는 탓이라고나 할까.

 

 나는 요즘 별다른 연구라곤 하지 않기 때문에 논문이나 저서와는 담을 쌓고, 다만 봉사’(奉仕)라는 이름으로 버스를 타고 강의실을 찾아가 매주 2시간의 고전강의를 진행할 뿐이다. 모든 시설이 갖추어진 아름다운 강의실에서 서로 시선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가장 보람 있는 시간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일찍이 큰 형님께서 땀 흘리며 등으로 저다 주신 책상과 그 작은 책꽂이가 수 백 배로 불어나고 커져서 나의 학문을 길러주고 직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분에 넘치는 독서종자(讀書種子)의 길을 걷도록 인도해주신 것을 깨닫게 된다. 형님은 변변치 못한 나를 바라볼 때마다 마치 당신이 출세라도 한 것처럼 대견히 여기고 은근히 즐거워하면서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으로 고향을 지키시다가 만년에는 서울에서 천수(天壽)를 다하고 저 멀리 피안의 세계로 떠나셨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더라도 형님께서 남겨주신 70년 전의 작은 책꽂이만은 끝까지 아끼고 간직하고 싶다.

(201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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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월간수필문학> 추천완료(1994). 동촌지교헌수필집7, 장편소설2,

<동양철학과 한국사상>외 학술논저 다수,

청주대 충북대 성균관대 경원대 강사 역임. 청주교육대학교 교수 역임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교수 역임,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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