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수필

‘사랑’과 ‘존경’

송담(松潭) 2014. 1. 14. 12:04

 

사랑존경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말과 존경한다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러나 그 용법이 얼마나 적절한지는 잘 알 수 없는 때가 많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사랑한다는 말은 애틋이 여기어 아끼고 위한다, 남녀가 서로 정을 들여 애틋하게 그린다, 동정하여 친절히 대하고 너그럽게 베푼다, 동정긍휼구원행복의 실현을 지향한다는 뜻으로 쓰며, ‘존경한다는 말은 높이어 공경한다는 뜻으로 쓴단다. 여기서 존경한다는 말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서 높인다는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영어로 'love''respect' 라는 낱말의 뜻이 서로 겹쳐지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서로 차이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이웃과 동포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대상을 반드시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훌륭한 인격자나,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을 보면, 사랑하는 차원을 넘어서 존경한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성현(聖賢)이나 위인을 존경하면서 살아 왔다.

 

 사람들이 사람을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것은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하고자하는(좋아하는, 탐내는) 감정이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감발(感發)하게 되면 여러 가지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고 어떤 감정은 다시 행동(실천)으로 발전하게 된다.

 

 희노애구애오욕이라는 칠정(七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스런 성품이다. 유학(儒學)에는 칠정처럼 중요한 낱말로 사단(四端)이라는 낱말이 있다. 칠정은 중용에서 보이는 말이고 사단은 맹자에서 보이는 말인데 사단도 정()에 속하는 것이므로 말만 다를 뿐, 칠정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사덕(四德)을 하늘로부터 받아서 태어났기 때문에 인()에서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에서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에서는 사양지심(辭讓之心 또는 恭敬之心), ()에서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실마리로 울어난다는 것이다. 남을 동정하고,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하고, 남을 공경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모두 칠정이나 다름없이 사람의 감정과 관계됨으로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을 뿐, 칠정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은 없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존경할 때 그 존경은 그 대상을 높이어 공경하는 것이고 공경하는 것은 공손히 섬기는 것이다. 공경의 수준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수준보다 한 층 높은 것이어서 종교에서는 성신(聖神)이나 성인(聖人)이 공경의 대상이 되고, 상경지례(上敬之禮)니 흠숭지례(欽崇之禮)니 공경지례(恭敬之禮)라는 말도 쓴다.

 

 우리는 흔히 좋아한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엄격히 구별하지 않듯, 사랑한다는 말과 존경한다는 말을 엄격히 구별하지 않고 쓰는 수가 많다. 이것은 언어자체의 속성이나 언어생활의 불완전성(미숙)에 그 원인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어느 친지들의 모임에서 한국의 효사상이라는 연제로 강연한 일이 있었는데 발표가 끝나고 나서 서면질의가 들어왔다. 질의의 요지는 사랑존경의 뜻은 각각 무엇이며 누가 누구에게 쓰는 말인지 밝히라는 것인데 질의자는 시간의 제약으로 답변을 들을 수 없음을 알고 차후에 서면으로 답변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질의의 동기는 젊은이들이 사랑존경을 혼동하여 쓰거나 엄격히 구별하지 않는 것을 자주 목격한 나머지 그것을 따져보고 싶은 것으로 보였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그래, 고맙다.”

 

 이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주고받는 말이며 우리는 이런 말을 이웃이나 대중매체를 통하여 흔히 들을 수 있다. ‘엄마아빠니 하는 낱말은 어린이들의 말이라 제 길로 한 길 다 큰 자식들이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거니와 여기서 말한 사랑이란 낱말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봄직하다.

 

 자식의 눈으로 볼 때 부모는 친구나 이웃이나 연인이나 동기간과는 다른 특별한 관계에 있고 존엄이 인정되는 존재이다. 따라서 사랑해요라는 말로는 부모의 특별한 존재를 드러내지 못 하므로 그 말의 불완전성이나 부적합성이 드러나게 된다. 부모는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그보다 한층 높은 공경의 대상이요 경애의 대상이요 효순(孝順)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부자자효(父慈子孝)라는 말과 같이 부모는 자녀를 자애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순(孝順, 孝敬)하는 관계에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보면 부모에게 공경해요.’, ‘존경해요.’, ‘경애해요.’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자녀들이 부모를 특별히 공경(존경, 경애)하는 마음은 없고 다만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는 까닭일까. 제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남의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패덕(悖德)이요 제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남의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패례(悖禮)라고 하는데 패덕과 패례가 너무나 예사로운 세상이 되어서 그럴까. 아무튼 자식은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관계에 있음을 볼 때 사랑은 부모가 자식에게 할 말이고 존경은 자식이 부모에게 할 말임이 분명하다.

 

 우리 한민족은 세계의 어느 민족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존경이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로부터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한다는 말이나 존경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자주 쓰지는 않은 것 같다. 구태여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자식은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알고 부모는 자식의 공경심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알고도 남는다. 극진한 사랑과 공경은 가슴속에 깊이깊이 감추어진 채 쉽사리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경지이기에.

(2013.6)

 

 

지 교 헌 / 전 청주교육대학교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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