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맹목적 감정이 아니다
흔히들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표현도 있다. 뜨거운 감정에 사로잡혀 그 황홀함 때문에 이성을 잃는다는 뜻이리라. 그것이 순수한 애정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여기에서 사랑은 저절로 빠져드는 감정으로 동일시된다. 그래서 많은 싱글들은 생각한다. 마음에 맞는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 그렇지 만나기만 하면 나도 그 꿈같은 사랑을 뜨겁게 나누리라. 이러한 기대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설렘과 달콤함, 또는 몽롱하게 흘려 있는 상태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은 그의 명저 「사랑의 기술」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기의 전 인격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부질없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랑은 맹목적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부단한 연마와 자기 수양을 통해 키워지는 하나의 능력이다. 자기중심적인 욕망만을 자극하는 문화를 거슬러 인생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구현하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그러한 정진(精進)은 상대를 자기의 영역에 묶어두고 그 관계를 다른 세계로부터 단절시킨 상태에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사랑은 훈련이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삶과 생각의 자유가 확장되어야 한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 사랑할수록 오히려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상대방을 직시하고 자아를 성찰하는 시선이 바로 서야 한다. 우리는 이성을 잘 알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남성의 세계와 여성의 세계는 긴 역사 속에서 단절된 채 형성되어왔다. 그렇다면 진정한 연애란 그 이질성을 극복하고 서로 적응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마다 두 개의 유리를 지니고 살아간다. 하나는 겨울이고 다른 하나는 창이다. 그 두 유리가 얼마나 선명한가에 행복이 달려 있다. 타인을 보는 창이 굴절 작용을 일으키거나 자기를 보는 거울이 희미해진다면 삶은 어느 부분에선가 일그러진다. 그 창과 거울을 정직하고 맑게 지켜가는 자세로 늘 깨어 있는 자만이 생산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사랑과 연애는 그러한 각성의 한 활동이다.
김찬호 / ‘사회를 보는 논리’중에서
사진출처 : 유형민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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