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또 하나의 ‘이기적 유전자’

송담(松潭) 2011. 9. 1. 16:32

 

화폐, 또 하나의 이기적 유전자

 

 

 

 유전자에 대한 획기적인 개념을 제시한 책으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있다. 이 책에서 이기적 유전자라 함은, 사람이나 생물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유전자가 아니라, 유전자 자체가 무척 이기적이라는 뜻이다. 

 

 생물의 번식이나 진화에서 주어를 바꿔보자. 눈에 보이는 동식물군이나 개체들이 아니라 그들을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들이 모든 변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일시적인 유전자 조합을 보존하는 기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당신과 유전자의 관계는 무엇인가. 당신은 병들면 고통스러워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닥치면 두려워한다. 그런데 유전자도 그럴까? 도킨스에 의하면 만일 당신이 자녀를 한 명이라도 낳았다면 유전자는 당신의 몸에 아무런 미련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유전자는 오로지 자신의 연명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관점을 바꾸면 유전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유전자를 위해 존재하는 셈이다.

   

 최재천 교수는 이기적 유전자를 설명하면서 흥미로운 비유를 들었다. 흔히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질문을 바꿔서 닭이 알을 위해 존재하는가 알이 닭을 위해 존재하는가. 라고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알은 닭이 그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징검다리 내지 보조장치에 불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알이 그다음의 알로 넘어가기 위해 닭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 된다. 생물체와 유전자의 관계도 그러하다. 유전자를 주인공으로 놓고 생명의 자기 복재 현상을 바라보아도 별로 무리가 없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보면 그 논거가 치밀하게 제시된다. 

 

 그러한 패러다임을 응용하여 이제 사람과 돈의 관계를 뒤집어 생각해보자. 돈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돈을 위해 존재한다. 돈이 이 세상의 주인공으로서 자기의 무한한 증식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망가지고 사회가 균열되고 자연이 붕괴되는 것에 돈은 전혀 괘념치 않는다. 돈은 오로지 더 많은 돈으로 불어나기 위해 줄기차게 나아갈 뿐이다. 그리고 그 자기 복제의 속도는 갈수록 엄청나게 빨라진다. 궁극적으로 돈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도래한다.

 

 이 비유가 별로 무리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돈과 관계를 맺는 방식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돈 부풀리기에 매진한다. 10억 원만 생기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막상 그 꿈이 실현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주변에 20, 30억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야망을 불태운다. 웅 좋게 그 돈이 손에 쥐이면 이제 50, 100억이 보인다. 그 많은 돈을 벌어서 어디에 쓰려고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다. 그냥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목적일 뿐이다.

   

 술을 마시다 보면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나를 마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듯하다. 어떤 목적에 필요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 자체를 부풀리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돈이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그의 존재와 확장을 위해 모든 것이 제물로 봉양된다. 모든 것을 바치지만 구원은 없다.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피 말리는 심정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펀드매니저와 외환딜러들, 돈은 벌었지만 건강이 무너졌고 가족관계도 바닥난 사업가, 토지 보상금 때문에 다투다가 작은아버지를 살해하여 구속된 사람,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길거리에 나앉은 카지노 노숙인.... 하지만 돈은 그런 인생들을 조금도 연민하지 않는다. 유전자가 자신이 구성하고 있는 생명체의 고통에 전혀 관심이 없듯이, 아니 어쩌면, 돈은 유전자보다도 더욱 이기적인지 모른다.

 

김찬호 / ‘돈의 인문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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