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가치
직업이 돈을 움직이는 것이다 보니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과 호기심이 항상 생긴다. ‘돌고 도는 것이 돈이다’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돈이란 말에 있는 것 같다.
사회 교과서에 적혀 있는 대로 태초에는 곡물이나 짐승의 가죽이 돈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이면서 열심히 일을 하여야 얻을 수 있는 것이 교환이나 가치 측정의 도구로 쓰였을 것이다. 이 생각을 발전시키면 모든 가치는 노동에서 나온다. 노동만이 가치의 원천이다, 노동만이 신성한 것이다, 등등의 칼 마르크스 이론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퇴색한 지 오래되었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노동만이 아니라, 디자인으로 대표되는 창조성, 반도체나 대형 선박에서 볼 수 있는 기술력 이런 것들이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은 근육이라는 말과 잘 어울린다. 상상력이나 논리의 축적 같은 지적 활동도 노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나 어쩐지 잘 어울리는 말은 아닌 듯 하다.
각설, “돈이란 사람의 노력의 소산이다”라고 말하면 좀 근접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땀과 꿈과 노력을 시간에 버무려 놓은 결과가 돈이란 말이다. 인간 활동의 표현 단위를 돈이라고 보면 대개 비슷하다. 물론, 돈으로 표현되지 않는 활동도 있다. 예술이나 종교가 그러하다. 그러나 이 분야는 나중에 따로 생각하자. 여하간, 돈을 인간 활동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면, 돈을 보는 태도가 좀더 경건해져야 한다. 적은 돈이건 많은 돈이건 그 속에 표현되어 있는 사람의 활동량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힘들여 번 돈이 나의 손에 있을 때는, 어디엔가 사용되기 위하여 대기 중인 나의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힘들여 벌었으므로 당연히 신중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아무렇게나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바둑알을 사용하는 도박을 예로 들어 보자. 바둑알 다섯 개를 걸고 도박을 하기 위해서 두 시간 정도의 노동을 하여야 한다면 독자 여러분은 하겠는가? 돈을 벌 때는 버는 일만 하고 쓸 때는 어떻게 번 돈인지 금세 잊어버리는 사람도 주위에 많이 눈에 띈다.
잘 번 돈일수록 잘 쓰게 마련이다. 부당한 방법으로 번 돈은 부당하게 쓰이게 마련이다. 낭비나 도박, 이런 것들이 옳은 일이 아닌 이유는 돈의 원천이 사람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돈도 존중하여야 한다.
이런 원리를 잘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크고 좋은 부자가 된다. 그들은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횡재를 꿈꾸지 않는다. 조금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자. 모든 수익률은 위험률의 반대말이다. 예를 들어 일 년에 20%의 이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 있으니 투자하라는 말은 원금의 손실 위험이 20% 이상 높다는 말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극단적인 예로 로또복권이 있다. 로또 복권 한 장은 운이 아주 좋으면 수십 만 배의 이익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이는 또한 수십 만 배로 위험한 투자이기도 하다. 대개의 로또복권은 호주머니에서 휴지로 변하지 않던가? 그래서 부자들은 위험률이 낮고 원금 손실의 부담이 극히 적은 투자처를 우선 고르고, 동일한 위험률 안에서 수익이 조금 더 높은 투자처를 찾는다. 따라서 이익률이 5%냐 5.1%냐를 따지는 것이지, 이익률은 30%이면서 원금 손실의 위험은 절대 없다 같은 말은 결코 믿지 않는다.
‘수익률과 위험률은 같은 말이다’라는 명제만 외워두어도 살면서 돈 때문에 크게 마음 상할 일은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자기가 투자한 돈이 얼마나 위험한 줄 모르고 그냥 남의 말만 믿고 안전하리라 치부하는 사람들도 아직 무수히 많은 듯 하다.
김연신/ 한국선박운용(주) 대표
(2008.6.3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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