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자집 家訓

송담(松潭) 2010. 8. 18. 14:54

 

경주 최부자집 家訓

 

 

 

富者 3代를 못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慶州 최부잣집의 萬石꾼 傳統은

이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1600년대 초반에서 1900년 중반까지

무려 300년 동안 12代를 내려오며

만석꾼의 전통을 이어갔고

 

마지막으로 1950년에는 전 재산을 스스로

嶺南大 前身인 ‘대구대학’에 기증함으로써,

스스로를 역사의 무대 위로 던지고 사라졌다.

 

그동안 300년을 넘게 만석꾼 부자로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최부잣집 가문이 지켜 온 家訓은 오늘날 우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 육훈(六訓)- 제가(齊家) 덕목 >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이들은 대대로 진사는 지냈으나 한 번도 그 이상의 벼슬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양반으로서 과거는 보지만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는 일가의 곧은 마음가짐에 있다. 벼슬을 하여 조정에 나아가면 당쟁에 휘말릴 우려도 있고 탐욕을 부릴 우려도 있기 때문에 선조들이 철저하게 막았던 것이다. 소설 상도에서 보더라도 임상옥은 재물, 권력, 명예라는 세 가지 균형이 깨지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계율을 깨달으며 부질없는 욕심을 접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 욕망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원칙으로 최부잣집은 이를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고 가르친 것이다.

 

 

2. 재물을 모으되,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

 

최부잣집은 절대로 만 석 이상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다. 돈이 돈을 번다는 속담처럼 부의 증식은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최부잣집은 만석 이상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통상 70%대에 이르는 소작료를 관례로 했는데 남들같이 받으면 만석을 초과했기 때문에 소작료를 낮춰야 했다. 대체적으로 소작료는 40% 이하로 받아 소작인들은 최부잣집의 논이 늘어날수록 혜택이 늘어나기 때문에 더불어 기뻐했다고 한다. 부도 지나치게 축적하면 재앙이 된다는 경계로써 만 석을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3. 찾아오는 과객은 귀천을 구분하지 말고 후하게 대접하라

 

조선시대는 여행자들이 객사에서 자는 것보다 그 지방 유력자들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어가는 것을 청하는 일이 많았다. 여관과 같은 숙박업소가 발달하지 못한 사회적인 영향 탓도 있었으나 과객들을 대접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최부잣집이 만석꾼이라는 소문이 조선팔도에 알려지면서 영남을 오가는 과객들은 반드시 한 번씩은 들렸다가 갔다. 하루에 머물 수 있는 과객 수용수가 일백 명이나 되었으나 어떤 사람도 문전 박대를 당하지 않았다. 대접을 후하게 받은 과객들은 최부잣집의 덕망을 칭송하고 다녀 동학과 같은 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에도 최부잣집은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최부잣집은 1년에 3천석의 쌀을 소비하였는데 1천 석은 집안에서, 1천 석은 과객과 이웃을 위해 각각 사용했다.

 

4. 흉년에 땅을 늘리지 말라

 

부자가 되겠다는 이들은 사람이야 어찌 되든 시기를 보고 값이 폭락할 때 물건을 사들이겠다는 풍조가 만연했다. 심지어 기근이 들어 굶주림이 극심해지면 쌀 한 말에 논 한마지기를 넘기는 사례도 빈번했다. 그러나 최부잣집은 이러한 행동은 가진 사람의 도리가 아니요, 양반의 처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금기로 정해 그 시대에 모범이 될 수 있었다. 이 가훈 속에는 흉년에 논을 사면 원한을 사게 되어 훗날 다시 원한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라는 이치를 담고 있다. 가훈으로 이들은 남이 어려울 때 헐값으로 땅을 사는 것을 후손들에게 금지시켰고 이를 철저하게 지켰다.

 

 

5. 가문에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최씨 일가의 며느리들은 시집을 오면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게 했다. 만석꾼의 부자가 며느리들에게 무명옷을 입게 하는 것은 인색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으나 며느리들은 가풍을 잘 지켰다. 춘궁기에는 누구도 쌀밥을 먹지 않았다. 그들은 은수저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부자라고 해도 철저하게 절약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최부잣집은 이웃의 고통을 모른척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웃에서 굶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쌀을 내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적선지가(積善之家)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부자들이 대부분 인색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은 어떤 면에서 부호라기보다 자선사업가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 육연(六然)-수신(修身) 덕목 >

 

1. 자처초연(自處超然) - 스스로 초연하게 처신하라

 

2. 대인애연(對人靄然) - 남에게 부드럽고 온화하게 대하라

 

3.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져라

 

4. 유사감연(有事敢然) - 일을 당하면 용감하게 대처하라

 

5. 득의담연(得意淡然) - 뜻을 얻었어도 담담하게 처신하라

 

6. 실의태연(失意泰然) - 뜻을 잃었어도 태연하게 처신하라

 

 

최부자 가문의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1884-1970)의 결단은

또 하나의 인생 사표(師表)입니다.

 

못다 푼 신학문의 열망으로 영남대학의 전신인 대구대 와 청구대를 세웠고 백산상회를 세워 일제시대에 독립자금을 지원했던 그는 노스님에게서 받은 금언을 평생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財物은 糞尿(분뇨 : 똥거름)와 같아서

한곳에 모아 두면 惡臭(악취)가 나 견딜 수 없고

골고루 四方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출처 : 다음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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