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여가를 빼앗긴 불행한 삶

송담(松潭) 2011. 7. 19. 15:06

 

여가를 빼앗긴 불행한 삶

 

 

 

 

 자본주의는 상품을 가진 사람보다는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 우월함을 보장하는 체제다. 노동력이란 상품만을 가지고 있을 때 자본가보다 열등한 지위에 있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월급을 받아 소비자가 되는 짧은 한순간,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순간적이나마 노동자는 상품을 구매할 돈을 가지고 있고 자본가는 팔아야 할 상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 노동자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돈을 쓸 수도 있고 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본가는 노동자의 이런 자유와 우월함을 견딜 수가 없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자본가가 월급을 준 이유는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상품을 자신이 받은 돈으로 사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자본가는 다양한 유혹의 기술을 개발하는데 혈안이 된다. 이미 월급으로 우리에게 준 돈을 강제로 뺏을 수 없다면, 남은 길은 자발적으로 소비하도록 유혹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바다의 집어등처럼 화려하기만 한 대중문화는 바로 이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오징어를 잡을 때, 선원들은 배에 가득 화려한 등을 밝힌다. 이것이 바로 집어등이다. 바다 깊은 곳에서 살고 있는 오징어의 시선을 끌기 위해 마련된 치명적인 유혹의 장치인 것이다.

 

 

 영화 제작자이자 대중문화 비판가 기 드보르(1931~1994)는 자본의 유혹 논리를 성찰했던 사람이다. 그는 우리가 스펙터클의 사회에 포획되어 훈육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텔레비전이나 스크린의 화면,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의 모니터, 나아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의 화면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기에 펼쳐지는 대중문화는 인간을 유혹한다. 유혹의 방식은 기본적으로 시각적인 것이다. 기 드보르가 현대사회를 스펙터클의 사회라고 규정했는데 스펙터클은 문자 그대로 황홀하고 매력적인 볼거리를 가리킨다. 물론 이런 볼거리 들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편집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발달한 대중매체는 대중매체 속의 이미지들을 현실 세계보다 더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여기서 일종의 착시 효과가 생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나 자연 재난이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우리가 전쟁이나 재난을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만든 전쟁 영화나 재난 영화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온몸으로 겪어야만 했던 현실 서계는 사라지고 시각적으로 특화된 이미지의 세계만이 남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가 시간을 노동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착각했다. 그렇지만 여가시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된시간이 결코 아니다.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볼거리들에 사로잡히거나 아니면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여가 시간은 자유로운 창조의 시간이나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상품들로부터 유혹당하도록 고안된 시간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 드보르는 여가 시간 동안 우리가 노동의 결과에 대해 굴복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여가 시간마저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셈이다.

 

 

강신주 / ‘철학이 필요한 시간중에서 발췌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