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송담(松潭) 2011. 6. 29. 14:28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냉혹한 의사다. 그는 마치 으레 있는 일인 듯 차분하게 말을 이어간다. “직장암 말기군요. 이제 6개월 정도 남은 것 같네요.” 어느 햇빛 좋은 날 사형선고를 받는다면, 당신은 절망할 것이다. 병원 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 벤치에 앉아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젊은 연인, 아니면 무심하게 피어 있는 꽃들, 도대체 이것들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말기 암환자로 판명된 사람들은 가장 먼저 마음에 커튼을 두텁게 친다고 한다. 살아 있는 것들을 보면 너무 절망스럽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분홍빛으로 생생하기만 한데, 자신만이 차가운 겨울 속으로 잠기는 것 같다. ‘왜 나인가? 이렇게 많은 살아 있는 것들이 있는데, 왜 하필 나인가?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많이 했는가?’ 친구가 와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위로하려는 그가 밉기까지 하다. ‘네가 지금 내 고통을 아니? 그렇게 걱정스럽다면 네가 대신 죽어줄 수 있니?’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렇지만 죽음은 혼자 걸을 수밖에 없는외로운 길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죽음의 문턱까지만 따라올 뿐 그 다음부터는 오직 나 혼자 가야만 한다. 그래서 죽음은 지독하게 무섭고 두려운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험 업계는 죽음에 대한 우리의 공포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의 공포를 가중시키고, 그를 통해서 오늘도 새로운 보험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고민하느라 지금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될 것을 놓치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죽는 존재이기에 앞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죽음 때문에 소중한 장밋빛 삶을 회색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것은 아니가. 그래서 고대 그리스 현자 에피쿠로스(BC342?~271)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이미 2,000여 년 전에 죽음에 대한 부질없는 공포를 해체하려고 했던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편지 -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죽음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현자의 생각에는 건널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는 사람들이 이율배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평상시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해서 어떻게든 삶을 늘리려고 열망한다. 조그만 질병에도 병원을 들락거리며 몸에 좋다는 온갖 보양식을 찾기도 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 어떻게 해서든지 죽으려고 열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삶에 어떤 희망도 남아 있지 않거나 허무를 느낄 때 그들은 아주 쉽게 자살을 꿈꾸는 것이다. 그렇지만 죽음을 회피하려고 하든 아니면 죽음을 꿈꾸든 간에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삶 자체로 향유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회피의 대상이든 소망의 대상이든 보통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이다. 이것이야말로 에피쿠로스가 우려했던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자는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그는 죽음을 기준으로 해서 삶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그 자체로 향유하는 사람이다. “현자는 단순히 긴 삶이 아니라, 가장 즐거운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만약 말기 암이란 진단이 떨러진다면, 현자는 어떤 자세를 보일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별다른 동요 없이 삶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겁게 향유할 것이다. 6개월 뒤 죽는다는 두려움으로 지금 주어진 소중한 삶을 회색빛으로 물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현자는 살아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죽었다면 죽음은 어떤 고통도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즐겁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으로 아름다운 자태와 향내에 소홀한 꽃을 본 적이 있는가인간이 이름 모를 꽃보다 어리석어서는 안 될 일이다.

 

 

강신주 / ‘철학이 필요한 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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