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江) / 한승원
내 탐진(探眞)의 강에 성스럽고 풋풋한 여자 살고 있네.
언제 입 맞추고 춤추며 노래하고
언제 수다를 떨고 언제 침묵할 것인지,
언제 슬퍼하고 언제 앙칼지게 울부짖을 것인지 아는 그 여자는 밤마다
우렁이각시 되어 내 침실로 찾아와 질퍽한
사랑의 담금질로 나를 잠재워 놓고 이 강으로 돌아가네.
그 맨살의 향 맑고 달콤한 맛에 환장한 나는
바람 되어 그 여자 물살을 철벅철벅 밟아대고,
해오라기 되어 여울목에서 은어 사냥에 몰입하고,
먹구름 되어 천둥을 토하며 그 여자의 몽실몽실한 은빛 가슴에 비를 뿌리고,
산그늘 되어 그 여자의 심연에 나를 담그면
아, 타오르네, 우리 사랑 술 익는 해질녘의 타는 노을처럼.
* 오늘 새벽, 탐진강변(장흥읍)에서 읽은 詩입니다.
* 한승원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 장편소설로 《아제아제바라아제》 《다산》 《추사》 《초의》 등 다수가 있음. 1991년 시집 《열애일기》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하며 시인으로도 활동. 시집으로 《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 《노을 아래 파도를 줍다》 《달 긷는 집》 등이 있음.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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