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거짓말, 투사 그리고 자아 분열

송담(松潭) 2011. 3. 30. 15:18

 

 

거짓말, 투사 그리고 자아 분열

 

 

 나와 남들 간의 관계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그리고 그 관계는 매우 묘한 관계이다. 사회적 동물인 나는 남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시에 나를 남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는 가끔 거짓말을 한다. 남을 해치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은 나를 지키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반면에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거짓말은 차원이 다르다.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아니고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득에는 금전적,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고 정신적, 심리적인 것도 포함된다.

 

 나는 매일 아침 몸을 깨끗하게 한다. 마음도 마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늘 씻어내야 한다. 내 마음속의 지저분한 것들을 밖으로 몰아내야 한다. 제일 쉬운 방법은 내 마음이 지닌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을 다른 사람의 것들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이를 정신분석학에서는 투사(投射)’라는 방어기제로 부른다. 투사를 하면 내 것이었던 더러운 것이 남의 것이 되니 마음이 편해진다.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더러운 사회의 불쌍한 희생자로 변신할 수도 있다. 내가 내 마음의 더러운 점을 스스로 욕할 수는 없지만 내가 남의 더러운 점을 욕할 수 있게 되니, 그에 따른 쾌감과 카타르시스도 있다. 나의 비도덕성을 남의 비도덕성으로 만들어 내가 마치 도덕적인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투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투사적 동일화가 있다. 내 마음에서 제거하고 싶은 것을 일단 남에게 투사한다. 내가 버린 것을 받아들인 남의 무의식은 그것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을 더 철저하고 안전하게 비난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체계적으로 하기 시작하고 그것이 글로 표현되어 돌아다니면 사회적인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들은 동시에 호기심의 동물이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 이야기가 재미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점점 퍼져 나간다. 일단 퍼져 나간 이야기의 진실을 밝히기는 어렵다. 세월이 흘러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고 해도 그 이야기의 재미에 일단 빠져버린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이 뭉친 덩어리로 살아간다. 좋은 것들이 많으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나쁜 것들이 많으면 나쁜 사람으로 여겨진다. 내가 가진 좋은 면만을 강조하고 나쁜 면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 나쁜 면을 남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일종의 자아(自我) 분열상태이다. 나를 나 전체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분열된 자아가 집안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이득을 취하려 하면 불가피하게 남들의 자아를 심하게 해친다. 안타깝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내가 가진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밖으로 투사하기보다는 내면적 성찰을 통해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을 잘 통합해 놓아야 자기 분열을 피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더라도 인격이 성숙해지는 길이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다. 정도를 넘어서면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갈 수 있는 길도 아니다.

 

 내 마음의 것은 내 마음 안에서 정리되어야 한다. 자기 집이 냄새가 나고 더러워진다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집 밖으로 오물을 투기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남이 버린 쓰레기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자발적으로 들여다보는 것도 참 이상한 일이다. 향기가 나는 물건도 아닌데.

 

정도언 / 서울대 교수 정신분석

(2011.3.30.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