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부족국가? 물 오용국가!
한동안 물 절약이 강조될 때 ‘우리나라는 UN이 지정한 물부족국가’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물을 아끼고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UN이 지정한 물부족국가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인구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는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라는 사설 연구소에서 국가별로 강수량과 인구를 변수로 하여 물기근, 물부족, 물풍요 국가로 분류한 자료를 UNESCO가 한 보고서에 인용한 것이 UN의 공식 발표인 것처럼 오용되어 온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평균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1.3배이지만 인구밀도가 높아 케냐, 모로코, 르완다, 소말리아, 영국 등과 함께 물부족국가군에 포함되었다. PAI 분류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같이 땅 면적이 적고 인구가 많은 나라는 물부족국가가 되고, 상대적으로 국토면적이 넓은 아프리카, 사막의 나라들은 절대적 물기근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풍족 국가가 된다.
PAI에 따라 물 자원 정도를 평가하면 강수량이 늘거나 인구가 대폭 줄지 않는 이상 아무리 많은 댐을 지어도 우리나라는 영원한 물부족 국가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동안 PAI 분류 지표를 근거로 물이 부족하므로 수자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논리를 비약시켜 왔다. 그래서 이 지표의 유용성에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다.
광주·전남의 상수도 자료만 보더라도 물이 부족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008년 통계에 따르면 영산강 수계 광주광역시 상수도 정수장 이용률이 58.0%, 정수장 가동률은 75.2%이고, 전라남도 정수장 이용률은 52.4%, 정수장 가동률은 72.9%다. 정수장 용량은 취수원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취수장 용량 또한 충분히 남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농업용 댐 물 용량도 남는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물 관련 국가계획 중 최상위에 있는 수자원 장기종합계획 2006년 보고서에서 이미 물부족국가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물부족국가론이 재탕 되고 있다. 현 정부가 4대강사업을 추진하면서 우리나라는 물부족국가라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 영산강도 예외가 아니다. 자연스런 영산강과는 거리가 먼, 광주∼목포 구간의 상시 수심 5m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강 본류에 대형 댐을 ‘보’라는 이름으로 건설하고 있고, 광주댐 등 영산강유역권의 주요 농업용 댐 둑을 높이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 본류에 물을 가두어 물을 확보해야만 한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현재와 같은 영산본류 댐과 준설을 통한 물 확보 대책이라는 4대강 사업은 물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뱃길을 위한 수심 확보 때문에 마음대로 물을 쓸 수 없어 오히려 풍요 속의 빈곤이 될 것이다. 인위적으로 수위를 상승시키는 것이어서 인근 지하수위도 상승하여 농지 등이 침수될 것이다. 그리고 본류로 배수가 더 어려워져 홍수문제가 커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물 문제는 공급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수요관리의 부족, 지속가능한 순환구조가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 있다. 물부족 국가라는 시대착오적인 협박성 주장을 남발하며 댐건설을 정당성화 할 것이 아니라 빗물활용, 중수도, 양질의 지표수와 지하수가 순환되도록 하는 지속가능한 물관리가 급선무이다.
최지현 / 광주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 사무국장
(2011.3.22. 광주일보)
'교양· 상식.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재승 교수에게서 듣는 뇌과학 Q&A (0) | 2011.04.01 |
---|---|
거짓말, 투사 그리고 자아 분열 (0) | 2011.03.30 |
다문화사회 담론의 ‘함정’ (0) | 2011.03.08 |
식량안보 대비가 필요하다 (0) | 2010.12.16 |
우리는 언제 마음을 갖게 될까? (0) | 2010.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