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기러기의 사랑
독일의 브라운슈바이크 조류 보호지로 들어온 회색기러기 한 쌍이 있었습니다. 조류 연구가들은 이 기러기 가족을 정착시킬 계획으로 암기러기 오른쪽 날개깃을 잘랐습니다. 날개가 잘려 따뜻한 지중해로 갈 수 없자 수기러기도 옆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1월이 되면서 연못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워졌습니다. 조류 연구가들은 기러기가 얼어 죽지 않도록 우리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는 것으로 오해한 수기러기가 겁에 질려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수기러기는 호수 근처에 나타나 큰 소리로 암기러기를 찾았습니다. 사흘에 한 번꼴로 울면서 찬바람 부는 호수 위를 날아다녔습니다. 2월이 될 때까지 사방 100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호수와 강과 연못, 작은 도랑까지 찾아 헤맸습니다. 사람들 손에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날지 못하는 제짝이 차가운 호수 어딘가를 헤맬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이 물가 저 호수를 찾아다니며 울었습니다.
정착 계획이 실패했다고 판단한 조류 연구가들은 2월 어느 날, 2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호수에 암기러기를 풀어 주었습니다. 이틀 후 수기러기는 암기러기를 찾았습니다. 수기러기가 쉰 소리를 지르며 물 위를 돌자 암기러기가 즉각 트럼펫 같은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수기러기가 가파른 커브를 돌며 추락하듯 물위로 내리꽂혔습니다. 그러고는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댄 채 3미터가량 날아올랐다가 물속으로 떨어지며 오랫동안 소리 내며 울었습니다. 그 모습을 곁에 있던 사람들은 보았습니다. 새들도 그렇게 사랑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도종환 / 산방일기
(‘좋은생각’ 2011년 1월호에서)
기러기 사진이 마땅한 것이 없어서.....
사진출처 : 유형민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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