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tory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을 위하여

송담(松潭) 2010. 3. 1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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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을 위하여

 

 

3월의 학교는 만남의 계절이다. 새로운 학생들과의 대면을 시작으로 학교 업무와 학급 학생 파악, 수업 준비로 교사의 바쁜 일과는 이어진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낯섦보다는 만남에 익숙한 이들이기에 새로운 만남이 여물어가는 눈빛과 속삭임이 예사롭지 않다.

 

이럴 때 국어를 가르치는 필자는 아이들과 이형기 님의 시 〈낙화〉로 ‘이별’을 이야기한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정점을 지나면 떨어진다. 미련과 애착을 갖지 않고,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그저 떠나갈 뿐이다. 낙화는 지나가는 한 과정일 뿐이요, 뒤이을 ‘열매’가 본질임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낙화를 바라보는 화자의 태도다. 화자의 꽃은 ‘사랑’이기에 낙화는 ‘결별’이다. 사랑의 결별 앞에서 화자는 이렇게 심경을 토로한다.

 

“헤어지자 /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 내 영혼의 슬픈 눈.”

 

하롱하롱 꽃잎 지듯 이별을 거쳐 인생도 성숙을 향해 나아가기에 이별의 뒷모습은 아름다워야 한다. 하지만, 결별을 ‘성숙을 위한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기엔 이별의 아픔이 너무 크다. 그러기에 ‘헤어지자’고 말하는 상대 앞에서 이별을 인내하는 ‘슬픈 눈’이 더욱 애잔해 보인다.

 

최근 세간에 여가수와 방송인의 이별이 화제다. 그들의 아픈 사연이 호사가(好事家)의 입에 오를 일은 아니지만, ‘낙화’의 화자와 관련해 학생들과 이야기 나눠 보았다. 지나친 단순화겠지만,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의 설렘과 추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며칠을 칩거하는 쪽에 마음이 갈 것이다. 친구로서의 새로운 관계를 인정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의 성숙이라는 당위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일 것이다.

 

‘사랑-결별-성숙’의 도식(圖式)은 쉽지만, 이를 감내하는 화자의 마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진정한 나의 경험으로 녹여내기엔 경험의 깊이가 다름을, 추억의 깊이가 너무 깊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럴 즈음 법정스님의 입적은 또 다른 이별의 지혜로 다가온다. 스님이 말하는 ‘아름다운 마무리’는 ‘스스로 가난과 간소함을 선택해 소유의 비좁은 감옥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스님은 스스로를 비웠지만, 스님의 가르침은 여실히 꽉 찬 열매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낙화가 열매를 위한 과정이었듯이, 열매는 또한 ‘베풂을 위한 과정’이다. 스님이 실천한 청백가풍(淸白家風)의 무소유 정신은 다시 우리의 몫으로 돌아온다.

 

프루스트는 “인간은 사랑하는 대상이 방출하는 모든 기호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온몸과 마음이 살아 숨 쉬는 사랑인데, 내 욕망에 상대를 억지로 맞추려고 함으로써 갈등하고 고민하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이걸랑 상대에 대한 집착, 소유에 대한 욕망 때문은 아닌지 돌이켜 봄직도 하다. 법정스님이 남긴 비움의 미학을 되새겨 나를 비우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 상대가 떠날 때를 알고 미리 보내는 것도 한 지혜일 것이다.

 

김창균 / 광주 북성중학교 교사

(2010.3.17 광주일보)

 

 

 

사진 출처 :유형민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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