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tory

사랑은 그리 필요치 않은 발명품이다

송담(松潭) 2009. 10. 29. 11:17

 

사랑은 그리 필요치 않은 발명품이다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 곧 당위처럼 돼 버렸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사랑의 효용을 의심하는 건 마치 불경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묻고 싶다. 정말 사랑은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쟁취해야 할 덕목인 걸까. 비틀스의 히트곡 'All You Need Is Love'는 분명 명곡이지만, 그렇다고 그 제목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힘들다.

 

 '초식남'이란 말이 유행이다. 여성에 대한 호기심을 '상실'한 남자, 거울에 비친 스스로를 더 사랑하는 남자를 지칭하는 신조어다. 연애보단 독서나 커피 마시기를 즐기는 남자들. 하지만 이 '초식남'이란 말엔 일종의 비아냥도 담겨 있다. 명색이 남자로 태어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버렸다는 건 결국 '거세된 수컷'과 다를 바가 뭐가 있느냐고 묻는 듯한 느낌이랄까. '사람구실'을 하려면 연애를 해야 한다는 명제가 숨어 있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최근 방송국 대기실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연예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편견을 버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몸짱 연예인들이 참 대단하고 가끔 부럽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건넸더니 그 역시 운동에 푹 빠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닭가슴살과 샐러드만 먹고 힘들게 운동하면서도 매일매일 바뀌는 몸의 굴곡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고.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을 얻었단다.

 

 "힘들게 운동하고 나서 샤워기 아래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고 있는데 문득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오늘 이렇게 운동하면서 내가 행복했나?' 그런 질문이 머리를 스쳤거든. 그 이후 바로 집으로 돌아가 라면 두 개를 끓여 먹고, 낮잠 실컷 잤어. 그날 이후로 바로 운동을 그만뒀고. 몸매가 멋진 수도승처럼 사느니 설탕이 잔뜩 들어간 커피와 치즈케이크를 맘껏 즐기면서 파계승처럼 사는 게 낫겠다는 게 내 결론이야."

 

 그 말을 듣고 '행복'이란 결국 '결핍을 없애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사실 인간이 '사랑'이란 발명품에 열광하는 건 결국은 결핍을 해소하고 싶어하기 때문이 아니던가. 하지만 사랑조차 모든 결핍을 완전히 해소해주지 못한다는 걸 우리는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랑에 빠진 친구들을 만나봐도 이들은 처음엔 얼마나 행복한지 자랑을 늘어놓으며 동의를 구하지만, 주변의 반응이 시큰둥해지면 은밀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혼자만의 시간 부족, 연인이 생긴 만큼 주변 사람들과 소원해지는 데서 생기는 또 다른 고민, 취미생활의 부재까지…. 뱃멀미에 지친 뱃사람들이 휴식을 위해 항구에 내렸다가 그만 영원히 발이 묶여 버린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매년 뉴스에선 남녀의 평균 결혼 연령을 통계로 발표하지만, 사실 남녀의 결혼에 적령기라는 게 어디 있겠는가. 희대의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어떤 여자도 소유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나 역시 어떤 여자에게도 소유당하지 않는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왔던 동양계 배우 존 론 역시 이런 말을 남겼다. "혼자 지낸다는 것은 정말로 고독한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했기에 담담히 받아들인다."

 

 사랑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한 번쯤 사랑과 삶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나는 사랑을 얻기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을 한 지금, 나는 과연 행복한가? 어쩌면 살아가면서 당연히 사랑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진정 원했던 다른 무엇인가를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린 것은 아닐까?

 

 유치한 결론이지만. 언제나 정답 따윈 없다.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만큼은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우린 모두 정말로 행복해지길 원한다는 것, 사랑도 결국은 그렇게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말이다.

 

김태훈 / 팝 칼럼리스트

(2009.10.29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