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리추얼(ritual,의식)

송담(松潭) 2009. 8. 14. 20:32

 

리추얼(ritual,의식)



 리추얼은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정한 행동패턴을 의미한다. 형태상으로는 습관과 리추얼은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심리적 차이가 존재한다. 습관에는 ‘의미부여’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습관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반복되는 행동패턴을 의미한다.


 반면 리추얼에는 반복되는 행동패턴과 더불어 일정한 정서적 반응과 의미부여 과정이 동반된다. ‘사랑받는다는 느낌’, ‘가슴 설레는 느낌’ 등등 내 아침식사 장면에서는 아내가 따뜻한 빵을 내 앞에 두며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맛있게 먹으라고 한다. 이때, 뭔가 가슴 뿌듯한 느낌이 동반되면 그 행동은 ‘리추얼’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있었음에도 이후 전혀 기억이 없다면, 그것은 단지 습관일 뿐이다. 사랑이 식으면 그렇게 된다.


 리추얼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도 바로 리추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의 지식인들은 깊이 고뇌했다. ‘도대체 이 엄청난 야만이 어떻게 독일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말인가? 괴테, 쉴러, 베토벤의 나라 아니던가?’


 그들은 독일의 권위주의적 사회구조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가족, 학교, 일터에서 반복되는 권위주의적 리추얼이 권력자에 대한 일방적 복종과 충성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전쟁 이후, 독일인들은 사회 구석구석에 남겨진 이 집단 리추얼을 철저하게 해체했다. 그래서 독일 대학에서는 졸업식이 없다. 졸업식 가운도 물론 없다. 졸업식을 집단으로 모여 권위를 확인하는 세리머니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나는 그래서 한 번도 졸업식 가운을 입어본 적이 없다. 반성이 철저한 독일인들은 초등학교의 합창시간도 없앴다. 함께 노래하는 행위가 집단에 대한 무의식적 충성으로 이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신 소리가 아주 착한 리코더를 불게한다.


 그러나 리추얼이 나치 독일의 경우처럼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근대사회에서 집단 리추얼은 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문화심리학을 전공한 나는 문화를 ‘정서공유의 리추얼’로 정의한다. 문화란 특정한 정서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공유되는 정서와 리추얼이 없는 사회는 문화가 없는 것과 같다. 어떠한 정서적 매개나 의미부여의 과정도 없는 기계적 구조만 남는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리추얼이 없는 삶은 정서가 메마른 건조한 삶이다.


 리추얼이 강력한 문화현상이 되는 까닭은 정서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에서 리추얼의 기능은 절대적이다. 한국 집단주의의 원흉(?)으로 일컬어지는 해병전우회, 고대교우회, 호남향우회 이 세 집단의 결속력이 그토록 강한 이유는 무엇인가? 리추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네마다 컨테이너를 놓아두고, 때만 되면 해병예비군복을 입고 나타나는 이 해병전우회가 즐기는 것은 ‘귀신 잡는 해병’의 정서적 리추얼이다.


 고대향우회도 마찬가지다. 모이면 자기들끼리 ‘고대’를 외친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민족고대...’ 어쩌구 하는 건배구호가 있었다. 선창자가 “....을 위하...”하면 다른 사람들은 이어서 모두 “...고!”를 외치고 다음은 “고! 고!”, 그 다음은 “고! 고! 고!”하는 식이다. 고대라고 “고!”란다.


 호남향우회도 마찬가지다. 남도 특유의 리추얼은 언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뒤끝을 흐리며 말끝마다 상대방의 정서적 공감을 유도하는 “아따, 형님, ....하지요, 잉!”하는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은 전 세계 어딜 가도 호남사람들은 서로 뭉치게 하는 강력한 정서 공유의 수단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누구나 그토록 힘들게 찾아내려 하는 내 삶의 목적을 국가가 그렇게 간단히 정해준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후진적 경제구조를 벗어나 국가의 일대변혁을 꾀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의례, 즉 리추얼처럼 강력한 수단은 없었다. 당시 아침마다 외웠던 국가를 위한 내 삶의 목적은 지금까지도 내 입안을 빙빙 돈다. 나뿐만이 아니다. 197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모든 이들에게 물어보라. 왜 이 세상에 태어났냐고. 그러면 대부분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혹은 ‘국민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햇갈려 하는 이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김정운(문화심리학자) /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중에서 발췌정리

 

'교양· 상식.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적 기업  (0) 2009.08.26
누구에게나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  (0) 2009.08.21
고흥(高興)  (0) 2009.08.04
지식인과 한국사회  (0) 2009.05.20
개미와 베짱이   (0) 2009.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