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애정의 성취와 비극적 결말

송담(松潭) 2009. 4. 1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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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의 성취와 비극적 결말

- 김시습의 금오신화 中 『이생규장전』-



『이생규장전』은 이생과 최랑의 사랑, 이별, 죽음의 인생 역정을 다룬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은 14세기 중엽 고려사회이다. 개성에 살던 18세 미소년 이생은 최랑의 연정시를 듣고는 화답시를 담 너머로 던진다. 격정에 휩싸인 이생은 그 날 밤으로 담을 타고 넘어가 최랑은 만난다.


저는 당신을 평생토록 모시고서 행복을 길이 누리려는 것입니다. 그대는 어찌 말씀을 박하게 하십니까? 저는 비록 여자의 몸이오나 마음이 태연하거늘 대장부로서 그리 말씀하십니까.


 둘의 만남이 탄로날 것을 우려하는 이생하게 최랑이 하는 당돌한 말이다. 그녀는 나중에 규중의 비밀이 누설되더라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한다. 최랑의 활달한 성격과 죽음을 걸고 지키는 사랑. 이것이 이 작품을 박진감 넘치게 끌고 가는 힘이며, 읽는 이를 매료시키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매일 밤, 은밀히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의 관계는 학업을 소홀히 한 이생이 아버지의 의심을 받고 남쪽의 농장으로 쫓겨 가면서 위기를 맞는다. 딸의 비밀스런 사랑을 알게 된 최랑의 부모가 결혼을 추진하나 이 역시 쉽지 않다. 두 집안의 신분이 문제된 것이다.


 최랑의 집안은 도시의 거대한 저택에서 화려한 생활을 하는 구 귀족층이다. 이에 반해 이생의 집안은 지방의 토지를 기반으로 독서를 통해 관계에 진출하려던 사(士) 계층이다. 세속적 안목으로 본다면 부유한 귀족과의 결합은 결코 마다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흥 계층으로 구 귀족층에 비타협적이며 자신만만했던 이생의 아버지는 이를 거부한다. 결국 이들의 결합은 최랑 집안에서 세 차례나 중매를 보내 이생의 아버지를 설득해서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생과 최랑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홍건적의 난 때 최랑이 죽음을 당함으로써 파국을 맞이한다. 애정 성취가 핵심 내용인 소설에서 사랑한 것이 전쟁이라는 폭압적 악에 의해 자행될 때 읽는 이는 분노까지 느낀다.


 전쟁이 끝난 후 폐허가 된 옛집에 홀로 돌아온 이생. 허탈감에 빠져 망연자실해 있는 그의 앞에 생전의 모습과 똑같이 아름다운 아내, 최랑이 나타난다. 그녀는 환신(幻身)으로 이생에 다시 태어난 이유를 남은 인연을 맺어 옛날의 굳은 맹세를 결코 헛되이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생은 매우 기뻐하며 자신의 소원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는 최랑이 귀신임을 알면서도 일상적인 결혼생활을 계속한다.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고 심지어는 친척 빈객의 방문과 길흉 대사를 모두 제쳐놓고 문을 굳게 닫고 최랑과 함께 시구를 창수하며 몇 해를 살았다.


 그러나 예정되어 있던 이별, 운명은 이들의 강한 사랑으로도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최랑은 저승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음을 알린다. 이에 이생은 슬픔을 걷잡지 못하고, 백 년 동안 같이 살다가 진토가 될 수 없다면 지금 구천으로 따라가겠다고 한다. 이생은 최랑과 함께 구천으로 떠나지는 못했지만 산골에 버려져 있던 그녀의 유해를 거두어 장사 지내고 병이 나서 얼마 후 세상을 떠난다.


 이생과 최랑을 비롯하여 『금오신화』에 나오는 젊은 남녀는 한결같이 진실한 사랑에 가해지는 가혹한 폭력, 이별을 거부하고 애정을 성취하고자 한다. 비록 그 사랑이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끝나더라도, 절대적 사랑을 끝까지 지키려 했다.


고미숙 외4인 / ‘우리 고전문학을 찾아서’중에서

 

 

 

* 김시습(1435~1493)은 조선 전기, 양심적 지식인의 전형으로 부당한 사회현실에 굴종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저항적 삶을 살았다. 그는 인간 본래의 양심, 자아를 억압하는 현실의 사회구조를 인정하지 않은 고독한 예외자, 아웃사이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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