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
사랑하는 이여
나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어 주오
여기 들꽃처럼 피어
긴 세월의 한 점을 지나간
사랑으로 살다가 흙으로 사라진
고단한 영혼이 잠들어 있네
사랑은 기쁨의 순간보다
고통의 나날이 더 많은 것을
하지만 짧은 환희가
머나먼 날들의 힘겨움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고…
서정윤 시인의 ‘묘비명’이라는 시다. 세상을 살면서 어느 누구나 한번은 생각해 볼 것이다. 이 세상을 마치고 무덤 속에 들어간다면 자신 앞에 놓인 묘비에 과연 어떤 글귀가 새겨질 건지…
한 달 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은 이 세상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고 썼다. 시인 천상병은 귀천(歸天)이라고 새겨 자신의 시처럼 이 세상 소풍을 끝냈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내 우물쭈물하다 이럴 줄 알았다”라는 글귀로 그의 인생을 정의했다. 장미꽃 가시에 찔려 죽은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오오 장미여, 순수한 모순의 꽃”이라고 애절함을 표했다. 또 데카르트는 “고로 이 철학자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라고 써 철학에 대한 영원한 열정을 나타내고자 했다. 기행으로 유명했던 중광스님은 “에이, 괜히 왔다”로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을 드러냈다.
혹자는 묘비명을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후회의 총합’이라고도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다간 킹 크림슨이 부른 에피타프(Epitaph·묘비명)의 노랫말처럼 ‘혼란’이 라는 글귀를 새기게 될지도 모른다.
마라톤 풀코스를 25번이나 완주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를 묘비명으로 미리 새겨 삶의 나태함을 경계한다고 했다. 삶의 이정표는 사람마다 다르다. 오늘 자신의 묘비명을 한번 써 보는 것은 어떨까.
최소한 앞으로의 삶에 방향을 제시해 줄 수는 있을 테니.
김일환 / 여론매체부장
(2009.3.20 광주일보)
강남구작 '새벽강'
(2009.4.15 광주일보)
'어떻게 살 것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의 하산 길에서 (0) | 2009.10.16 |
---|---|
죽음이 말을 걸어올 때 (0) | 2009.10.16 |
현재라는 불행한 시간 (0) | 2009.09.25 |
우리가 죽음으로 무엇을 잃었단 말인가? (0) | 2009.08.07 |
우리는 오늘 죽을 수도 있다 (0) | 2007.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