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tory

여성의 슬픈 착각

송담(松潭) 2008. 10. 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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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민(常民) 여성의 슬픈 착각

 

 

 초옥은 <포의교집(布衣交集)>의 주인공이다. 포의교집(布衣交集)은 1864년 서울을 주 무대로 한 고전소설 작품으로 작가는 알 수 없다. 초옥은 도시 상민의 유부녀지만 초라한 양반을 사랑한다. 미모와 지성에 주체적 열정까지 갖추고 그에 어울리는 남성과의 사랑을 꿈꾸지만 시대적 윤리, 남성들의 이기심 등의 장애에 부딪혀 상처 받고 타협보다는 자기 생을 선택하는 여성이다.

 

 이 작품은 시골 양반 출신의 사십 줄의 남자와 궁녀 출신으로 상인과 혼인하여 양반가 행랑에 살고 있는 열일곱살 여인간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초옥이지만, 이야기는 상대 남자인 이생의 사연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생은 명목만 양반인 충청도 출신의 선비로 별 재주도 없고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위인이다. 시골집에는 젊은 아내가 있고, 본인은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출세의 기회를 잡으려고 상경한 장 씨 성의 친구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는 친구가 머물고 있는 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별 생각 없이 과거를 치르거나 유흥을 즐기거나 가끔 산사를 찾아 시문을 논하기도 하는, 그저 그런 인물이다. 그러던 그의 눈에 장 진사 댁 행랑에 사는 초옥이란 여자가 띈 것이다.

 

 초옥은 원래 남영위궁의 시녀로 있었다. 궁 밖에 살 때 한 소년이 그녀에게 반하여 몰래 만나 주기를 원한 일이 있었다. 소년이 상사병으로 다 죽게 되자 그 부모가 만나 주기를 간청했으나 초옥은 끝내 그 청을 거절했다. 그러자 소년이 죽어서는 혼령이 한 늙은 궁녀에게 붙어서 밤낮으로 초옥을 치고 때렸다. 초옥은 그 궁녀를 피해 궁궐을 나와 강가에 숨어 있었고, 마침 양씨 성을 가진 사람이 발견해 속량시켜 주고 자기 아들과 혼인을 시킨 터였다. 이생을 만났을 때는 혼인한 지 일 년쯤 지난 뒤였다.

 

 장 진사의 집은 예전에 중인이 살던 곳으로 중문 밖에 우물이 하나 있어 행랑 사람들이 물을 긷기 위해 예사로 드나들곤 했다. 초옥이 그 우물에 물을 길러 왔을 때 이생이 그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하고 만다. 실은 그 우물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었던지라, 이생뿐 아니라 여러 사내들도 초옥의 자태에 반해 연심을 품고 있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여성에게 미모는 하나의 ‘계급’이다. 초옥은 비록 상민의 아내이나 타고난 미모로 인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춘 한 명의 ‘강자’였다. 초옥에게 반한 이생은 그녀가 물을 길러 오거나 헛청에서 바느질을 하는 모습을 훔쳐보며 마음을 졸인다. 그러나 자신이 없고 우유부단하여 속으로만 애를 쓰다가 어느 날 참지 못하고 초옥에게 물을 한 그릇 떠 오라고 청한다. 그것이 계기였다. 그리고 밤마다 이생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지 사흘 째 되던 날 이생이 참지 못하고 애욕을 드러내며 고민스러워하자 이렇게 말한다.

 

“서로를 귀히 여겨 알아보고서도 마음을 속이는 건 옳지 않습니다. 이는 하늘의 이치에도 본디 있던 바이고, 남녀 사이는 참기 어려운 것입니다. 원컨대 낭군께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셔서 가슴에 깊은 응어리를 만들지 마셔요. 정이 있는데 토해내지 못하면 반드시 병이 나고, 병이 생기고 나면 애초에 몰랐던 것보다 못하지요. 그림자 속의 그리움, 그림 속의 사랑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군자의 배필은 즐기되 음란하지 않고, 슬퍼도 지나치지 않는 법이니....”

 

 남녀의 애욕에 대해 이만큼 진솔하고 당찬 발언은 다시 보기 힘들 정도였다. 더군다나 그 말은 한 사람의 아내로 있는 여성이 외간 남자에게 한 것이다. 초옥은 이처럼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주저하거나 회의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초옥은 또한 모성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과 통하는 어려운 처지의 남자를 만나 그를 제 힘으로 뒷바라지해서 입신출세시키고자 했다. 그것이 초옥의 꿈이자 삶의 목표였다. 일단 그런 사람을 만나고 나면 모든 것을 주겠다는 것이 그녀의 결심이었다.

 

 그렇게 꿈꾸던 인연이 이생과 맺어지자, 초옥은 자신의 그 마음을 무엇인가 주는 것으로 실천한다. 두 사람이 잠자리를 같이한 다음 날, 한나절 사이에 고운 버선을 지어서 이생에게 전해 준다. 이생이 선비들과 어울려 산사로 떠나 즐길 때, 그녀는 조카를 시켜 과일과 유과 한 광주리, 육포 한 합, 소주 한 병을 보낸다. 단지 마음만 주는 것이 아니라 정성이 담긴 ‘선물’을 통해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초옥의 사랑 방식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제 인연을 찾아 꿈꾸던 삶을 펼쳐 나갔다. 누가 뭐래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생과의 관계를 눈치 챈 남편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았지만, 그 마음과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초옥이 이룬 성공은 절반의 것이었다. 저 혼자만의 성공일 뿐이었다. 결연한 의지와 실천력은 그녀 일방의 것이었을 뿐, 쌍방의 것이 되지 못했다. 이생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둘이 함께 살 방편을 만들어 주겠다고 제의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자 이생은 “내게는 어린 아내가 있고 아들이 없는데 어떻게 또 여자를 둘 수 있겠냐?‘ 하며 거절한다. 또한 곁에서 누가 초옥이 이생에게서 떠나 다른 남자의 사람이 되었다고 속였을 때 이생은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 “길가의 우물을 어찌 혼자 마실 수 있겠소? 하물며 본디 내 물건이 아니었는데 뭘.” 

 그렇다. 이생에게 초옥은 길가에 우물이었다. 누구라도 떠먹을 수 있는 , 운 좋게 자기가 떠먹을 기회를 얻은.

 

 자신이 이생에게 ‘길가의 우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초옥은 자신의 사랑을 거두어들인다. 미련 없이. “산 같던 정은 눈이 녹고 구름이 흩어지듯 사라지고, 금석 같던 약속은 바람에 우박이 날리듯 사라져, 다시는 관계가 회복되지 않았다.

‘어찌 이리 경솔한가’하는 한 마디 외에, 따로 하소연하거나 책망하는 말조차 없이 간단한, 하지만 심연처럼 영원한 그런 끝이었다.

 

어떻게 다시 이어 볼 수 있을까 하는 이생의 미련은 허튼짓일 따름이었다. 이미 끝난 일이었다. 초옥은 그렇게 실패했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대한 스스로의 무지와 그릇된 꿈이 불러온 실패였다. 이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제 방식으로 움직인 것뿐. 초옥의 실패는 이제 와서 상대방을 탓할 수도 없는 순전한 그 자신의 실패였다. 남자들의 실상을 알리없던 한 상민 여성의 ‘슬픈 착각’이었다. 그러나 그 실패는 진정 초옥만의 것이었을까. 남자들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 말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일까.

 

 남녀가 만나 서로 반하고 불꽃이 튀어 사랑을 나누다가 어느 순간 한 사람이 이별을 고하고 상대편이 울고불고하다가 막을 내리는 그런 이야기는 동서고금에 수없이 널려있다. 초옥의 슬픈 비극은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 후 초옥은 분연히 털고 일어섰고 그녀는 습관처럼 다시 만났다. 초옥은 이생과 헤어진 후 남자를 버렸고, 그녀는 두 번째 남자를 징검다리 삼아 세 번째 남자에게로 건너갔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다른 것일까. 아니다. 두 사람은 같다. 세상 속에 던져진 여인의 앞면과 뒷면이다. 사랑 앞에 선 두 여인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성공으로 보였으나 결국은 실패하고 만 여인 초옥. 그러나 필자는 그녀가 실패한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 허튼 착각의 몸짓이 허튼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 지난날의, 그리고 오늘날의 그 많은 ‘초옥’들.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김대숙/ 평택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대석/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 1’중에서)

 

* 독자가 임의로 문장의 일부를 생략하거나 잘라내어 연결하였음

 

 

 

 

  

 

일탈을 꿈꾸는 사랑에 대하여


결혼의 제도권을 일탈하여 누군가와 사랑을 하게 되면

거짓말을 자주하게 됩니다.


먼저 배우자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연애상대(애인)와 만나서 갖게 되는 시간들 모두가

배우자를 속여야만 가질 수 있는 시간입니다.


다음으로 애인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설령 사랑이란 이름으로 처음엔 진실을 호소했더라도

그 애인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거짓말이 되고

그 어떤 낭만도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그 남자는 순간의 정욕만을 채우고 도망치는 속물이지요.


여성분들은 

유부남, 또는 책임성 없는 남자들이 쳐 놓은 덫에 걸려

상처받고 신음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의 제도권을 일탈한 사랑은

다음과 같은 속성을 갖습니다.


첫째, 사랑은 처음과 끝이 다르다.

처음에는 황홀하지만 끝은 눈물이요, 그 눈물은 도망치는

비겁자가 흘리는 가식의 눈물입니다.

모든 것이 쇼(Show)로 마무리됩니다.


둘째,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처음의 가슴 뛰는 황홀감이 퇴색해 갑니다.

‘한계사랑(효용)체감(遞減)의 법칙’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18개월에서 36개월 정도라 합니다.

아무리 길어야 3년!


셋째, 모두에게 상처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일탈의 과정에서 배우자와 애인간 전투가 벌어질 수 있고,

가정이 파국으로 가기도 하며,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이름하여 ‘외상후증후군’!


따라서, 이 땅의 남자들이여!

모름지기, 책임질 수 있다면 사랑하라!

여인을 농락하지 마라!

이것이 결론입니다.


허나,

과연 ‘사랑’이라는 것이

교과서대로만 되는지?

그 답을 묻는 자, 바보요,

그 답을 줄 사람,

이 세상 어디메인가!


                                                                                          < '수신제가'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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