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tory

사랑에 미쳐 왕좌를 버리다

송담(松潭) 2007. 12. 13. 07:39
 

 

사랑에 미쳐 왕좌를 버리다



 양녕대군 이제는 태종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고 부인은 김한로의 딸이다. 김한로는 태종과 함께 공부하여 동방으로 불리면서 조선 개국에 큰 공을 세웠다. 아버지 태종을 따라 왕자의 난에 가담했던 양녕대군은 강인한 성격이었다. 왕세자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있었고 장인 또한 태종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 권력이 막강했다.


 태종은 개성에서 조정을 다스리고 있었고 양녕대군은 한양에서 조정을 다스리고 있었다. 태종이 개성에서 조정을 다스린 것은 한양 천도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성과 한양에서 동시에 나라를 다스리다 보니 권력이 이원화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많은 대신들이 떠오르는 태양인 양녕대군을 받들자 태종은 이를 고깝게 생각했다. 부자지간에 권력 암투가 벌어지면서 왕세자 양녕대군이 풍류생활을 즐기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눈이 하얗게 내리던 동짓달이었다. 밤이 깊어가는 사직동의 한 골목길에 술 취한 사내가 비틀대며 걸어오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골목 끝 대갓집 앞에 화려한 가마가 와서 멎더니 한 여인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술 취한 사내는 여인을 보자 눈이 크게 떠졌다. 눈(雪) 때문에 치마를 살짝 걷어 올리고 쓰개치마를 팔에 걸친 젊은 여인이 대문으로 들어가려다가 이쪽을 힐끗 쳐다보자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여인은 골목 앞에 사내가 서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고개를 떨어트린 뒤에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계집종이 총총히 따라 들어가고 대문이 덜컹 하고 닫혔다. 가마는 세를 낸 듯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어쩌면 그렇게 맑은 눈과 투명한 살결을 가지고 있을까. 음전하게 가르마를 탄 머리에 옥비녀를 꽂은 얼굴은 하얗고 호수 같은 눈은 흑수정처럼 반짝거렸다. 사내는 여인의 눈부신 미모에 가슴이 설랬다.

“저 여인이 누구냐?”

사내는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 듯이 부축하는 종자에게 물었다. “저하, 어리(於里)라는 여자입니다.”

종자가 눈을 비비고 대답했다.

“어리라... 무엇을 하는 여자냐?”

“장안의 최고 미인입니다. 어리 때문에 몸살을 앓지 앓은 한량이 없다고 합니다.” 종자가 낄낄대고 웃었다.

“기녀나?”   “저하, 중추부지사 곽선의 첩입니다.”

“곽선이 분에 넘치는 복을 받고 있구나.”

사내가 탄식을 하듯이 내뱉었다.

 

 이 사내가 조선조 태종 이방원의 첫째 아들인 세자 이제였다. 이제는 호방하고 풍류 기질을 갖고 있는 인물로 이미 세자빈을 맞아들였으나 궐 밖을 돌아다니면서 기생집에 출입하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제는 그날도 기생집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우연히 장안의 미인이라는 어리를 발견한 것이다. 대궐로 돌아온 세자는 술이 멀쩡하게 깨는 기분이었다. 꿈결인 듯 어리의 아름다운 얼굴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저렸다. 세자는 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어리는 양자 이승의 집 후원에 있는 별실에서 문을 열어놓고 눈이 내리는 풍경을 아련히 내다보고 있었다. 하늘은 잿빛으로 낮게 가라앉아 있었으나 목화송이 같은 눈송이들이 하얗게 내려 나뭇가지마다 설화가 핀 듯 지극히 아름다웠다. 어리는 눈 내리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수심에 잠겼다. 어리는 젊디젊은 여인이었다. 곽선의 집에서 여종으로 있다가 자색이 눈에 띄어 첩이 되었다. 그러나 곽선은 높은 벼슬을 지냈으나 늙어서 마음을 줄 수 없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것을 내다보면서 어리는 가슴을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그 후 세자는 어리를 강제로 취하고 어리도 세자와의 사랑을 불태웠다. 세자는 혈기왕성한 스물두 살의 청년이었고 모든 권세를 갖고 있었다.  세자와 어리는 밤이나 낮이나 시간의 흐름을 잊고 사랑에 몰두했다. 그러나 세자와 어리의 사랑은 결국 태종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세자 이제가 민간의 부녀자인 어리와 강제로 동침하고 대궐로 납치하여 지낸 사건은 세자가 반성문을 쓰고 세자와 가까이 지낸 이오방, 이법화 어린 내시 김기 등은 모두 사형을 당했다. 어리도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왕세자 이제가 간곡하게 청하여 대궐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그쳤다.


 태종의 본처인 원경왕후에게서 낳은 네 아들, 즉 양녕, 효령, 충녕, 성녕대군은 그 추종자들에 의해 치열하게 왕세자 자리를 다투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토록 장자 상속권을 두고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왕세자 이제는 어리를 잊을 수가 없었다. 어리는 세자의 많은 여인 중에 미모가 가장 출중했다. 세자는 어리의 아름다운 얼굴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어리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녀의 맑은 웃음소리,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아름다운 미소를 생각할 때마다 간장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세자가 침식을 잊다시피 하면서 어리를 그리워하자 동궁전은 비상이 걸렸다. 세자빈인 김씨는 세자가 넋을 잃고 앉아 있자 친정어머니와 상의했고 숙빈의 친정어머니 김씨는 여리를 찾아서 사가의 여종으로 위장시켜 대궐로 들여보냈다. 세자는 반색을 하고 어리를 맞아드렸다. 세자와 어리는 다시 불같은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어리가 잉태를 하여 아이를 낳았으나 대궐에서 돌볼 사람이 없었다. 이에 세자는 누이인 정순공주와 경정공주에게 유모를 구해 달라고 청했다.


 어리가 아이를 낳은 사건은 왕세자 이제를 반대하는 세력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 후 태종에게 알려져 세자빈 김씨는 동궁에서 �겨 나고  태종의 친구이자 세자빈 김씨 아버지인 김한로는 귀향에 보내졌다. 이에 양녕대군은 태종의 처분에 반발했다. 그는 어리를 내보내라는 태종의 영을 거절하고 서신을 올려 반발했는데 태종은 분노하여 세자를 폐하여 광주로 추방하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삼았다.


 양녕대군 이제는 풍류남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세자의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장차 세종이 되는 충녕이 총명하여 양보하기 위해 거짓으로 광인 흉내를 내었다는 것은 야사에 지나지 않는다. 양녕대군 이제는 충녕과 치열하게 장자 상속권을 놓고 암투를 벌렸다. 그는 고집이 세고 태종에게 반발했다. 특히 어리를 축출할 때는 극렬하게 반발하여 태종의 노여움을 샀다. 이로 미루어 이제와 어리가 얼마나 열렬하게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이제는 왕세자 자리까지 포기하면서 어리를 사랑했다. 이는 영국의 윈저 공이 심프슨 부인을 사랑하여 왕위까지 포기함으로써 세기의 로맨스라는 말을 듣는 것과 흡사하다. 심프슨 부인은 이혼녀에다가 많은 스캔들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었고 윈저 공은 바람둥이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만나자마자 열렬하게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하여 세기의 로맨스라는 말을 들었다.


 사랑은 때때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나라를 기울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뛰어난 미인을 일으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도 하는데 미인 때문에 나라를 잃기도 하고 왕좌에서 축출당하기도 한다. 주(周)의 마지막 왕인 유왕은 미인 포사 때문에 나라를 잃었고, 춘추전국시대의 오왕 부차는 서시 때문에 정사를 돌보지 않고 폭정을 일삼다가 오자서를 자결하게 하여 월나라의 침략을 받았다. 연산군은 장녹수를 총애하여 혼군(昏君)이 되어 끝내 왕좌에서 쫓겨나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비참하게 죽는다.

역사가들은 미인을 요부라고 불렀고 요부를 사랑한 남자들을 폭군이라고 불렀다.


이수광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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