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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또는 부재(不在)의 사랑
- 우리들의 사랑을 위해서는 은하수의 이별이 있어야 하네 -
미리내에 얽힌 사랑이야기로 얼른 떠오르는 것은 동아시아의 견우 직녀 설화다. 옥황상제는 손녀 직녀(織女)를 목동 견우(牽牛)에게 출가시켰다. 둘은 금실이 어찌나 좋았던지, 온종일 붙어 희롱하느라 베짜기와 소치기라는 제 할 일들을 잊었다.
옥황상제는 진노하여 그 둘을 미리내 양쪽에 떼어놓고 한 해 한 번, 7월7석 날에만 만날 수 있게 했다. 칠석날, 드넓은 미리내를 건널 길 없어 그들이 안타까워하자, 까마귀와 까치들이 머리를 맞대어 다리(오작교)를 놓아주었다는 얘기.
옛 사람들은 이날 오는 비, 곧 칠석우(七夕雨)를 직녀와 견우가 흘리는 눈물이라 여겼다. 미리내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견우성(독수리자리의 알파별 알타이르)과 직녀성(거문고자리의 알파별 베가)이 실제로 7월7석 무렵엔 서로 가까워 보인다 한다.
서정주는 이 설화를 소재로 <견우의 노래>라는 시를 썼다.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었다, 낮었다 출렁이는 물ᄉ살과
물ㅅ살 몰아 갔다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하(銀河)ᄉ물이 있어야 하네.
도라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세이고......
허이언 허이언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섭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七月) 칠석(七夕)이 도라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ᄒ세.”
가장 간절한 사랑은 연인들이 서로 떨어져 있을 때 솟아남을 이 시는 내비친다. 그리고 연인들 사이의 장애물이 험할수록,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그 사랑이 더욱 굳건해진다고 노래한다.
그런 사랑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양 속담 하나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말한다. 우리 경험은 양쪽 다 옳다고 가르치는 것 같다.
어떤 사랑은 시공간적 거리에 허물어지고, 어떤 사랑은 그 거리를 연료로 더욱 세차게 불타오른다. “촛불은 바람에 꺼지고 큰불은 바람에 활활 일듯, 이별은 작은 열정을 지워버리고 큰 열정을 더욱 키워준다”고 라로슈푸코는 말했다.
이별이 열정을 키우는 것은 부분적으로 기억의 미화작용 때문이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먼 곳의 연인은, 이미 죽은 연인은 한없이 고귀하게 치장된다. 그 때 부재(不在)의 사랑, 곧 그리움은 최고의 사랑이 된다.
고종석 / 객원논설위원
(2008.6.2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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