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람, 원효

송담(松潭) 2008. 6. 15. 19:37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람, 원효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보이더라도 부분만 보인다. 그가 그린 어느 한 부분만 보이고, 그가 한 말의 어느 한 부분만 들린다. 그래서 원효에 대해서는 가지가지 이야기가 난무한다. 일연은 원효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무엇에도 얽매지 않는 사람’이라고.


 나는 원효를 현실주의 신앙의 구현자로 설정한다. 현실주의란 현실에 매달린다는 말이 아니다. 범박하게 풀어보자면,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사람의 생애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불교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다. 원칙은 무너지기 쉽고 오해는 따르기 쉽다. 그러나 미로를 헤매지 않으며 오해를 무릅쓰면서, 사람이 살다 보면 당할 문제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기란 쉽지 않다. 원효는 그것을 감당했고, 그 같은 전범을 뒷사람에게 남기고 보여 준 사람이다. 성사(聖師)란 거기서 붙여진 이름일까?


 속과 성의 경계를 마음대로 드나들고자 했던 원효도 요석공주와의 사랑이며 설총을 낳은 일에 초연할 수만은 없었던가 보다. 스스로 파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를 부정(否定)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극복되는 초월의 단계다. 원효가 오늘날의 원효가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증법적 정반합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의상과의 중국행에서 원효는 큰 깨달음을 얻어 돌아왔었다. 그때 벌써 원효는 원효였다. 그러다 요석공주와의 만남, 불교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파계다. 하지만 원효에게 그것은 이미 원효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 부정 다음에 원효는 원효 아닌 원효로 거듭난다.


 원효 아닌 원효는 무애의 원효였다. 무애의 원효가 지향하는 바는 관념이나 치장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였다. 배우들이 노는 도구란 일반 민중들에게 익숙하고 재미있는 것이었으니, 거기서 빌려 어려운 불교의 교리를 쉽게 풀고, 누구나 가까이 하는 불교를 만들었다. 1980년대 운동권의 현장에서 ‘노가바’가 한참 유행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잘 아는 유행가 곡조에다 가사만 바꿔 부르는 운동권 노래다. 쉽게 부를 수 있을뿐더러 재미도 있었다. 그때 뜻밖에 탈춤이며 풍물이 대학생들 사이에 유행하기도 하였다. 본디 쓰임새가 그리했지만 운동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탈춤과 풍물에 민중적인 정서의 고갱이를 집어넣었고, 그것으로 자연스럽게 의식화의 도구로 썼다. 이 같은 방법의 창안자는 다름 아닌 벌써 1,400년 전의 원효라고 할 수 있다. 농사꾼에다 하급 기술자, 나아가 저 짐승들에게까지 부처님의 이름이 퍼졌다는 이 놀라운 광경, 그것은 원효가 만들어 낸 절묘한 전파 방법의 덕이었다.


 일연이 발견한 원효는 이런 원효였다. 고고한 학승만으로, 폐쇄적인 선승만으로 아닌 모두의 승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았던 인간 원효를 가장 잘 바라본 이는 아마도 일연이 처음 아니었을까?


고운기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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