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촌스러운 취미라니요!

송담(松潭) 2008. 5. 1. 14:20
 

 

촌스러운 취미라니요!



 테니스의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가 2006년 윔블던 대회기간 중 취재진으로부터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스타 선수에게 던지는 상투적 질문, 곧바로 대답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뜻밖에도 샤라포바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머뭇했다. 질문한 사람이 되레 어색해졌다. 그제야 샤라포바는 “내 취미는 우표수집인데, 에이전트가 공개 석상에서 밝히지 말라고 했다”며 쑥스러워했다. 우표수집이 취미라고 말하면 촌스럽게 비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정보기술IT시대가 되면서 우표수집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촌스러운 이미지로 비쳐질 것이란 에이전트의 생각은 좀 생뚱맞다. 스포츠 에이전트가 우표수집의 가치를 모를 수는 있어도 우표수집가에 대한 일반인의 여전한 호감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문제 아닐까?


 우표는 그 나라의 자연과 역사, 사회, 문화 등을 표현하는 축소예술의 꽃이다. 우표수집을 취미로 하면 역사적 안목과 문화적 지성, 예술적 감각을 모두 높일 수 있다. 지동설을 주창한 코페르니쿠그, 순수이성비판의 철학자 칸트에서부터 일제시대 민족의 횃불 안중근, 한국이 낳은 예술가 백남준 등 동서고금의 인물과 역사가 우표에 담겨있다. 잘 정리된 우표수집철을 가리켜 ‘지식과 상식의 보석함’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표수집이 최고의 취미로 꼽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유명한 우표수집가인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1882~1945)가 회고록에서 “우표에서 얻은 지식이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많다”고 한 말은 두고두고 인용되는 명언이다.


 우표수집을 영어로 무엇이라고 할까? 이렇게 물으면 열에 여덟은 ‘스탬프 컬렉션Stamp collection'이라고 할 것이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표수집을 나타내는 단어는 다로 있으니 ’필라텔리Philately'라는 말이다. 1864년 11월 헬팽이라는 프랑스의 우표수집가가 그리스어로 ‘사랑’이라는 뜻의 ‘Philo와, ’세금면제‘라는 뜻의 'ateleia'를 합쳐 ‘Philately’ 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뒤 세계 용어가 되었다고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표수집을 우취(郵趣)와 구분지어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세계우취연맹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우표를 수집하는 것이 우취, 단순히 우표를 사 앨범에 소장하는 것을 우표수집이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같은 취미라 해도 아마추어의 취미생활과 전문가의 안목은  엄연히 다르다는 전문가들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필라텔리스트였다. 이기열씨가 <디지털 포스트>에 소개한 글에 따르면 이승만은 1957년 1월 서울중앙우체국 새 청사 낙성식 때 축사를 하면서 “갑신정변 때 우정총국의 우표가 약탈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갑신정변이 1884년 일어났으니까 70년도 더 지난 시점이지만, 우표수집가였기에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이기열씨는 해석했다.


 독일 국민 중 스스로 우표수집가라고 여기는 사람이 750만 명에 이른다는 조사가 나온 적이 있다. 독일 인구의 11.5퍼센트가 우표수집을 즐긴다는 것이다. 이들을 모두 필라텔리스트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우표수집 취미를 촌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우표수집은 촌스러운 취미가 아니라 지적 품위를 높여주는 교양 활동이다.




* 우표 말

꽃에는 꽃말이 있다. 장미는 열정, 백합은 순결, 봉선화는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졌다는 것은 만국 공통사항이다. 젊은 연인들은 이런 꽃말을 줄줄 외운다.

 널리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우표에도 우표 말이 있다. 사각으로 된 편지 겉봉에 어디에 우표를 붙이냐에 따라 전하는 의미가 달라진다. 로랜드가 근대우편제도를 만들어내기 전의 우편증지제도에서 유래된 전통이다. 당시에는 편지 겉봉의 암호만 보고 뜻을 파악한 뒤 수취를 거부하는 사람이 많았다. 여기서 비롯된 우표 말은 다음과 같다. 미국 우취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아메리칸 필라텔리스트> 1985년 2월호에 나오는 얘기다.


왼쪽 구석에 우표를 뒤집어 붙이면 ‘당신을 사랑해’

왼쪽 구석에 옆으로 붙이면 ‘내 마음은 다른 사람 것이에요’

왼쪽 구석에 수직으로 붙이면 ‘안녕 내 사랑’

오른쪽 구석에 거꾸로 붙이면 ‘할 얘기 없음’

산단 중간에 붙이면 ‘예’

하단 중간에 붙이면 ‘아니오’

오른쪽 구석에 대각선으로 붙이면 ‘나를 사랑합니까?’

왼쪽 구석에 대각선으로 붙이면 ‘당신을 증오합니다.’

오른쪽 상단 구석에 붙이면 ‘당신의 우정을 바랍니다.’


이종탁 / ‘우체국 이야기’(황소자리 출판)중에서

 

                  <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

 

 * 1884년 11월 18일 근대우편업무의 개시와 함께 발행된 우표로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 의뢰하여 태극문양을 소재로 디자인한 보통우표 5종류가 제작되었다.  이 우표를 문위우표라 하는데 액면금액이 당시 화폐단위인 文으로 표시돼 있어 뒷날 우표수집가들이 붙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