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 & ≪대학≫
지금 여기서 덕을 베풀라, ‘평천하’가 싹튼다
≪소학≫은 11세기 유교사상가 주희가 꿈꾼 문명세계의 비전과 사회질서, 그리고 이를 이끌어내려는 리더십 양성 프로그램이다. ≪소학≫은 ‘소쇄응대’ 즉 집안을 씻고 청소하고, 인사하고 또 대답하는 기술을 몸에 익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소학≫의 주제는 몸을 훈련하는 일이다. 여기 ‘몸 훈련’이란 곧 관계 맺기 훈련을 이른다. 소학에서 사람다움은 타인과 제대로 관계 맺을 적에야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식 구실을 제대로 행할 적에 ‘아들인 나’가 드러나며, 믿음직한 친구 구실을 제대로 행할 적에 ‘벗으로서의 나’가 표출된다. 그러나 소학은 인간관계를 밝히는 길 찾기. 또는 각각의 네트워킹에 적합한 코드를 찾아 익히기라는 테마를 풀어헤친 책이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요, 아내의 남편이며, 아우의 형’이지. 돌올하게 홀로 존재하는 ‘개인’은 나가 아니다.
≪소학≫이 엘리트 양성을 위해 옛 글들을 솎아 편찬한 교재라면, ≪대학≫은 ≪예기≫라는 큰 책 속의 한 장을 떼어 책으로 만든 것이다. 주희는 유교문명을 부흥할 비전이 ≪대학≫속에 있다고 감동한 나머지,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고 그 속에 자기 비전을 흠뻑 담아 재구성하였다.
≪소학≫이 ‘몸 만들기’과정이라면 ≪대학≫은 ‘힘 만들기’ 프로그램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잘 알려진 대학의 전개 과정인데, 이를 이뤄내는 힘을 폭력이나 권력이 아닌 ‘매력’에서 구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아름다운 여성이 지나가면 그쪽으로 눈길이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사람들 눈을 끄는 미인의 힘이 ‘미적’매력이라면, 실력 있는 선생님에게 고개 숙이는 것은 그의 ‘지적’매력 때문이다. 대학은 ‘도덕적’ 매력의 정체를 알려 주고, 또 그것을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도덕적 매력’은 스스로는 낮추고, 상대방은 배려하는 ‘몸짓’에서 발생한다. 어렵고 힘든 일은 자기 몫으로 안고, 성공의 대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돌릴 적에 생겨나는 도덕적 매력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덕(德)이다. 덕을 수련하고(修身), 그 자아낸 힘으로 집안을 감동시키며(齊家), 나아가 나라 사람에게 미치고(治國), 급기야 온 천하와 산천초목조차 기꺼워하게 만들자(平天下)는 것이 대학의 비전이다.
≪대학≫이 주의하기를 바라는 점은, ‘내가 세상을 구하겠노라’라고 스스로 손을 들고 나서서는 결코 평화가 이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 뜻을 앞세우고 또 남에게 강요하는 식으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 도리어 자신을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도덕적 매력 속으로 주변이 빨려들 적에야 참된 평화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니 천하를 평화롭게 하겠노라며 제 손 들고 유엔 사무총장이 되려고 해선 될 일이 아니고, 나라를 이롭게 하기 위해 청와대로 가겠노라고 나서는 사람치고 제대로 일을 해내는 경우도 없다.
실은 내가 사는 이 동네, 이 직장에서 덕을 베푸는 자리에서 평천하의 씨앗은 돋아난다! 어처구니가 없다고? 너무 비정치적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어처구니가 없다고? 그렇다. 그런 점에서 대학은 전근대적이다. 마키아벨리식 권력과 폭력의 시장을 상정하지 못하고, 도덕적 세계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흑백갈등의 역사로 치면 지금쯤 피비린내가 진동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만델라의 힘(매력)으로 평화를 이뤄내지 않았던가. 도 캘커타의 뒷골목에서 빚은 테레사 수녀의 사랑은 세상을 감동시키지 않았던가. 아니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조차 폭력(하드 파워)을 넘어 매력(소프트 파워)에 주목하자고 주장하지 않았는가.(조지프 나이≪소프트 파워≫, 2004)
이런 점에서 대학은 또 탈 근대적이다. 폭력을 넘어 매력을 발견하고, 이를 형성할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권력과 폭력을 주제로 한 서구 근대의 세계관을 ‘산 만들기’에 비할 수 있다면, 대학은 ‘계곡 만들기’ 도는 자기 속에 웅덩이 파내기에 비할 수 있으리라. 조선의 대표적 유학자 이황과 이이의 호가 ‘퇴계’요 ‘율곡’이란 점은 바로 대학이 품은 ‘계˙곡’의 이미지를 잘 표현한다. 한데 산을 만들어 남을 압도하려는 생각 뒤에는 갈등과 전쟁이 남지만, 내 속에 웅덩이를 파내어 남이 끌려들도록 만드는 꿈은 화목과 평화를 빚어낸다.
배병삼 / 영신대 교수
(‘고전의 향연’-한겨레 출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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