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돈키호테 / 세르반테스

송담(松潭) 2008. 3. 30. 23:35

 

돈키호테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는 어떤 책일까?

 

 돈키호테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모 할인점 앞에서 이 책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더니 다음과 같이 답들을 내 놓았다.

“용감한 기사가 나오는 얘기요.”

“엉뚱한 기사 얘기 아닌가?”

“멋진 영웅이 나오는 얘기였던 것 같은데......”

“용감한 사람 이야기.”

모두가 틀렸다. 물론 “저 사람은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용감한 사람이라고 칭찬받은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돈키호테는 악에 맞서는 정의의 기사가 아니라, 낡은 갑옷을 두른 약해 빠진 노인네다. 그런 노인네 얘기가 바로 돈키호테인 것이다.

 

 

 200자 원고지 6,000장을 훨씬 넘어서는 대작의 내용을 한 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스페인 시골에 사는 늙은이 알론소 기하노가, 당시 유행하던 영웅담 “기사도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자신을 영웅으로 착각하고, 스스로를 기사 “돈키호테”라 칭하며 여행길에 나선다. 하지만 그 착각 때문에 가는 곳마다 사고를 치고, 결국 주위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이야기. 끝!

 

따지고 보면 사무실 구석에 멍하니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황당한 행동으로 주위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허약한 할아버지 기사의 무용담인 이 책에 대해 하나 더 알아 두어야 할 점이 있다. 이 책은 패러디(유명한 작가의 시나 운율을 모방하여 풍자적으로 꾸민 詩文) 소설이라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기사도 이야기’를 표절하여 유명해진 작품이다.

 

 

 

 

패션잡지와 돈키호테

 

영웅담 ‘기사도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자기가 영웅이라 착각한 노인네 얘기 ‘돈키호테’. 이 책의 내용은 풍차가 늘어선 들판에 간 기사 돈키호테가, 그 풍차를 보고 “저건 흉악한 거인이다.”라고 착각하여 결투를 시도했다가 상처투성이가 되거나, 먹이를 찾아 산을 헤매는 양떼를 보고 “악의 군대가 쳐들어 왔다!”며 아무 죄 없는 양들을 두들겨 패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행동들이 계속된다.

 

 

하지만 이런 돈키호테의 행동들도 패션잡지에 견주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이번 주말에 꿈에 그리던 그와 첫 데이트를 한다고 치자. 어떻게든 이번 데이트를 통해 그의 마음을 얻고 싶은 당신은, 유명한 패션잡지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자신을 매력 있게 연출할지 고민한다. 그러다가 어느 페이지에 “김태희 스타일로 남친의 시선을 내게 고정하기!”라고 나와 있음을 본다. 이를 본 당신은 당장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잡지에 나와 있는 김태희 스타일 그대로 데이트 장소에 나선다. 5분 후, 나타난 그는 당신의 얼굴을 보고 한마디 한다. “오늘 화장 짙네?” 대단한 실망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돈키호테’에서 저자 세르반테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즉, 아무리 잡지에 김태희가 입고 나왔던 옷을 똑같이 입어도 김태희가 될 수 없듯이, 영웅담 ‘기사도 이야기’라는 소설이 얼마나 현실 가능성이 없는 것인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돈키호테의 특징

 

 

1. 다혈질이다

여행 도중에 여성을 마차에 태운 수도승을 만난 돈키호테. 그는 갑자기 그 수도승들을 보고 “저놈들은 공주를 납치하는 마술사임에 틀림없다!”라고 착각하고, 그들에게 덤벼든다. 이와 같이 돈키호테는 악인이라 생각하는 상대에게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싸움을 거는 인물이었다.

 

 

2. 참견쟁이

여행 도중에 나무에 매달려 주인에게 매를 맞고 있던 소년을 발견한 돈키호테는 당장 주인과 다툰 끝에 소년을 풀어 주었다. 하지만 며칠 후, 우연히 돈키호테를 만난 소년은, 그에게 “당신 때문에 나중에 주인에게 더 많이 맞았다”라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이처럼 돈키호테는 남의 일에 참견을 계속하는 인물이었다.

 

 

3. 여성에게 약하다

여행 도중에 묵은 여관집 딸이 자신에게 반했다고 생각한 돈키호테. 그날 밤, 그녀를 억지로 끌어안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당신의 호의를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안중에도 없는 남자에게 이런 말을 들은 그녀는 깜짝 놀랐다. 이처럼 돈키호테는 여성에게 황당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었다.

 

 

이처럼 돈키호테는 다혈질에다 참견쟁이, 여성에게 약한 인물이었다. 한물간 옛날 영화 주인공 같지 않는가? 이런 인간적 인면이야말로 전 세계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사랑하는 이유인 것이다.

 

 

 

 

돈키호테를 쓴 이유

 

 

세르반테스가 살고 있던 당시 스페인은 가톨릭을 전파하기 위한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세르반테스 자신도 가톨릭 신도였기 때문에 그 전쟁에 참가했고, 거기에서 한쪽 팔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의해 격추된 후로 스페인은 쇠퇴 일로를 걷게 되었다. 세르반테스의 인생도 그 전쟁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전쟁 후, 세르반테스는 조국에서 군인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한쪽 팔이 없었기 때문에 관직을 얻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지방에서 세금을 걷는 하급관리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하는 것처럼 세금을 수금하던 세르반테스는 큰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불안하여 그 돈을 은행에 맡겼다. 그랬더니 맡기자마자 그 은행이 파산해 버렸다. 결국 세르반테스는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청구당했고, 그 돈을 모두 갚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국가의 돈을 횡령한 죄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세상사를 비관적으로 보게 되었고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전쟁에서 열심히 싸웠던 젊은 날의 나는 결국 무엇이었을까? 이처럼 나락에 떨어졌다는 건, 결국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것이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쓴 이유였다.

 

 

이 책에서 그는 “지금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은 잘못인 것이 아닐까?”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에 담고자 했던 메시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현실에 속지 말라!”는 것이었다.

 

혹시 당신이 지금 사랑이나 직장 문제로 뭔가 고민하고 있다면, 지금 믿고 있는 게 사실은 틀린 것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러면 뭔가 새로운 발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돈키호테는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알아보자. 정의의 기사라는 망상에 빠져 길을 나선 돈키호테는 100일이 지나고 나서 고향에 돌아온 후, 그는 중병에 걸리게 된다. 죽기 직전에야 정의의 기사라는 망상에서 벗어나, 원래의 보통 노인네인 알론소 기하노로 돌아간 것이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정의의 기사가 된 덕분에, 용감하고, 예의 바르고,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온몸으로 책 속의 영웅을 흉내 내었던 돈키호테. 그의 착각은 어느새 그의 인격조차 바꿔 버렸던 모양이다.

 

 

윤은숙/ ‘비유와 상징으로 풀어보는 철학 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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