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악마마저 이겨낸 남자

송담(松潭) 2007. 12. 31. 04:19
 

 

악마마저 이겨낸 남자

- 괴테 <파우스트> 2부 : ‘자기실현’에 대하여 -



 괴테는 파우스트 2부를 1825년에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나이 이미 76세다. 그리고 죽음을 불과 반년가량 앞둔 1831년 8월 중순에 다 마쳤다. 그래서인지 2부는 여러 면에서 젊은 시절에 썼던 1부와는 전혀 다르다. 1부에서 보여준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사랑 이야기는 ‘질풍노도(Strum und Drang)운동’을 일으켰던 당시 낭만주의 작가들이 좋아할 만한 사실적 ‘가정극’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2부는 시간적으로는 약 3,000년을 망라하고 공간적으로는 현실세계 뿐만 아니라 환상세계, 지하세계와 지상세계 그리고 천상세계까지를 아우르며 전개되는 일종의 ‘환상극’이다. 여기에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각종 신들과 요정들, 예언자들, 마녀들, 그리고 괴물들이 나온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전혀 다른 두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다. 1부에서 그레트헨이 갔던 무한한 자기 체념을 통한 ‘종교적 구원의 길’과 2부에서 파우스트가 보여준 무차별한 자기실현을 통한 ‘인간적 구원의 길’이다. 2부의 “인간적 구원의 길‘이 세속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만큼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2부에서  무엇이 주인공을 구원의 길에 이르게 했는가? 그것은 낭만주의적 자기실현이다. 물론 이때의 자기실현은 개인적 욕망뿐만 아니라 전쟁에서의 승리, 간척사업과 같은 사회적 욕망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내면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 실현하는 일, 오직 이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고 파우스트는 수많은 죄악과 슬픔 그리고 절망을 견디면서 ‘다시 희망을 품고 폭풍같이’ 일생을 헤쳐 왔다.


 그는 학문을 위해 평생을 다 보낸 어느 날에야, 자기 안에서 들리는 진정한 내면의 외침을 비로소 들었다. 그 다음에는 오직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지하세계에 내려가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았다. 자기실현을 위한 이 무차별적 열정, 이 무참한 용기가 그를 구원한 것이다.


 “파우스트의 죄는 무엇인가? 안식을 모르는 영혼이다. 파우스트의 구원은 무엇인가? 역시 안식을 모르는 영혼이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누구든 자기실현을 위해 줄곧 노력하며 애쓰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독일 낭만주의자들에게 자기실현이란 단순한 자아의 완성이 아니라 신(神)적인 것을 닮아가는 것이며 진리의 구현이자 구원의 길이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느 길을 갈 것인가? ‘무한한 자기 체념’을 할 것인가? 아니면 ‘무차별한 자기실현’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라.


김용규/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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