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리 휴지의 비밀
미혼 시절, 여자가 남자를 평가하는 기준은 모두 제각각이다.
평범하게 성격 좋고 능력 있는 남자를 선호하는 여자가 있는가하면 반드시 쌍꺼풀이 없는 남자여야 한다고 외모적인 기준이 확실한 여자도 있다. K에게 있어 그 기준은 손가락이었다. 그녀는 손가락이 굵고 짧은 남자를 좋아했다.
그런 손이 재주가 많고 성실하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것은 하나도 안 보고 오직 굵고 짧은 손가락 하나에 반해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다행히 남편은 재주가 많고 성실해서 그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가졌던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한 친구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너희들 그거 아니? 다들 코 큰 남자가 그것도 크다고들 하잖아. 그런데 코 가지고 비교를 하는 건 잘못된 것이고, 사실은 손가락으로 판단을 해야 한 대.”
“근거 있는 소리야?”
“사람 몸에서 손가락과 성기가 가장 늦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크기가 비례한다고 하던데……,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어.”
자신이 없는지 말꼬리를 사리면서도 친구는 경험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친구들의 시선이 다들 K를 향했다.
K 남편의 손가락 길이가 짧은 것은, 그동안 그녀의 입을 통해 누누이 강조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시선을 받은 K는 살짝 당황하며 말했다.
“저 말을 믿어? 우리 남편 작지 않아.”
“몇 센티나 되는데?”
한 친구가 우정을 핑계 삼아 예의 없는 질문을 직구로 날렸다.
“그걸 어떻게 알아? 자를 가지고 재 본 것도 아닌데.”
“하긴, 한번 재보겠다고 나서면 다들 펄쩍 뛰겠지?”
“그래도 꼭 한번 재보고 싶긴 해.”
다들 한번쯤은 내 남편이 평균치가 되는지 혹시 미달은 아닌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때 다른 친구가 입을 열었다.
“방법이 없지는 않지.” “어떤 방법?”
“다 쓴 두루마리 휴지 심 있잖아.
발기했을 때 그걸 장난삼아 끼워보는 거야.
그게 지름은 3.7센티 정도 되고 길이는 보통 10센티 정도 되거든.
그게 잘 끼워지는지 안 들어가는지, 또 끼워진 다음 심 위로 몇 센티가 남는지(?) 정도로 대충 짐작이 가능하긴 해.”
“어휴, 그걸 어떻게 끼우냐?”
“맞아. 산통 다 깨지겠다.”
“그러니까 요령이 필요하지.
미리 침대 옆에 비치 해 뒀다가 장난삼아 기습적으로 해야지.
참고로 말하면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치는 12센티래.”
다들 반신반의하면서도 어쩐지 새겨듣는 분위기였고 그것은 K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 기회에 남편의 누명(?)을 벗겨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녀는 남편의 사이즈에 대해 하등의 불만 없이 결혼생활 7년을 잘 누려왔기 때문이다.
며칠 뒤, 드디어 욕실 화장지의 휴지가 다 떨어진 것을 안 K는 결전의 날이 왔음을 알았다. 그 날 밤, 그녀는 평소답지 않은 적극적인 태도로 남편을 자극하는데 성공했고 성공을 확신한 순간, 신속하게 휴지 심을 들이댔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남편은 놀라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자기도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었을 뿐이다.
그런데 K는 웃지 못했다.
누명이라 생각했던 속설이 누명이 아니라는 것을 눈으로 그만 확인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날 밤의 잠자리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K는 나른한 만족감에 취해 잠자리에 들면서 혼자 생각했다.
평균이 무슨 소용 있나?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그리고 덧붙여 생각했다.
두루마리 휴지 심을 필요이상 크게 만들어 유부녀들을 심난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고 말이다.
휴지회사에 건의해 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박소현 / 연애 칼럼리스트
(2007.9.7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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