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 묶었을 뿐인데
나의 십년지기 친구 S는 매우 심심한 입맛을 가진 삼십대 중반의 남성이다. 국도 된장을 조금만 풀어 심심하게 끓인 시래기 국이나 최소한의 간만 한 무국, 감자 국 같은 것을 좋아한다. 이에 비해 그의 아내는 입맛이 정반대이다.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맵거나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신 음식, 한 젓가락 먹고 나면 밥을 두 숟가락은 먹어야 균형이 맞는 짠 젓갈류에 열광하는 식성이었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칠년을 함께 살았으니 그동안 이들 부부의 밥상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분쟁이 일어났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그래도 먹고 사는 중요한 문제라 어쩔 수없이 타협점을 찾기는 찾았다. 국은 남편을 배려해 최대한 싱겁게 끓이되 대신 외식은 아내가 좋아하는 식성을 우선시 할 것, 그리고 반찬은 두 사람의 식성을 정확히 반반씩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부부에게는 식성 못지않게 중요한 또 다른 갈등 상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두 사람이 선호하는 잠자리 패턴 역시 입맛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S는 심심한 입맛만큼 평범하고 심심한 섹스를 선호하는데 비해 아내는 강한 입맛만큼 자극적인 섹스를 원했다. 물론 그런 아내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S가 이만하면 최선(?)을 다했다 생각하는 순간에도 아내는 간이 덜 된 국을 떠먹는 것처럼 맛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기 일쑤였다. S는 절망했다. ‘이것은 과연 내 능력 밖의 일인가? 내가 남들보다 정력이 많이 부족한가? 수술이라도 해야 하나?’
아내의 떨떠름한 표정을 대할 때 마다 자신에게 수없이 묻기도 했을 뿐더러 때론 ‘맛있는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나는 경험이 많아야 실력도 향상될 것이 아닌가? 이참에 팔도 여자기행이라도 떠나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위험하고 어리석은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나이가 들수록 입맛이 순해지고 저절로 심심한 음식을 선호하게 된다는데 왜 아내는 여전히 이십대의 입맛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을 주눅 들게 하는지 원망스러우며, 칠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아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S, 그에게 나는 이렇게 조언해 주었다.
“아내의 손목을 묶어 봐.”
얼마 뒤에 만난 S의 얼굴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지난 7년 동안 아내가 그렇게 흥분하는 것을 처음 봤다고 했다. 그냥 손목만 묶었을 뿐인데도 굉장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은 곧 그동안 그들 부부의 섹스패턴이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주는 고백이기도 했다. 그동안 S의 노력은 뭐랄까, 맵게 한다고 고춧가루만 들입다 붓고, 짜게 한다고 소금만 계속 부은 행위였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요리에는 제대로 맛을 내기 위한 적절한 양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잠자리에서도 자극을 주기 위한 적절한 행위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이 정력의 문제일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태도나 표현의 문제일 때가 더 많고, 때로는 작은 도구의 사용이 어떤 감칠맛 나는 재료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할 때도 있다. S는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아내가 원하는 자극이란 것이 대단한 노력과 봉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를 원하는데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식성이야 몇 십 년을 고수한들 어떤가? 그러나 잠자리만은 몇 년간 같은 패턴을 고수한다는 것이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다. 몰라도 한번 시도해 보면 그만이다.
이번에는 손목을 묶었으니 다음에는 무엇을 묶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S네 부부는 조금씩 진화(?)할 것이다.
퓨전은 요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박소현/연애칼럼리스트
(2007.8.10 광주일보)
아래 그림은 위 기사와 무관합니다.
< 참고 1 >
마조히즘(masochism)
피학증이라는 변태성욕의 하나로 이성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대를 받음으로써 성적 쾌감을 얻는 일종의 색정광이다.
오스트리아의 소설가인 마조흐(Masoch)가 처음으로
이러한 인물을 그려낸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디즘(sadism)
가학증이라는 변태 성욕중의 하나로 성욕도착을 띤 작품을
쓴 프랑스 작가 새디(Sade)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이성을 때리고 무는 등 학대함으로써 자기의 성욕을
만족시키는 색정광을 일컫는다.
주로 사디즘은 남자에게 마조히즘은 여자에게 있다.
< 참고 2 >
마조히즘은 강력한 힘에 스스로를 복종시킴으로써,
사디즘은 자신의 힘으로 타인을 복종시킴으로써,
고독감과 허무감을 극복하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롬(정신분석학자)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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