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사랑과 용서의 반대말

송담(松潭) 2007. 5. 2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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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용서의 반대말

 


 아침 산책길에 문득 한쪽 운동화 끈이 풀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갈매기와 오리들이 시름없이 뒤엉켜 노니는 호수를 지나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려면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졸라매야 할 텐데, 나는 웬일인지 쪼그려 앉아 풀린 것들을 매듭지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연애 같은 건, 사랑 같은 건 몰라요. 그건 그저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몫으로 돌리죠. 나는 아주 단순하고 건조한 사람이에요. 중증의 건망증까지 앓고 있죠. 정말 하나도 기억나는 일이 없어요. 돌아서면 잊으려 애쓰기도 전에 다 잊어버리죠.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것만 남기려 애쓰니까요.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이야말로 얼마나 빨리 잊혀지나요...


 그런데 끈이 풀려 헐거워진 운동화를 끌며 적막한 공원을 헤매노라니 문득 내가 여태 잊지 못한 당신이 떠올랐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맹렬하게, 다시금 분노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무릇 모든 사랑이 그러하다. 깨지고 부서져 사라지는 순간 그 정체가 가장 선명해진다.

맥없이 소설의 일절을 들여다본다. 어이없고 민망하게도, 내가 쓴 글이 나를 가르친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내 짧은 생애의 사랑들을 나는 시작이 아니라 끝으로 기억한다. 달금

쌉싸래하고 매콤 시큼했던 과정까지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시작할 때부터 예상하며 준비했던 끝으로만 곱씹는다.


 오해로 끝난 연애는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을, 환멸로 끝난 연애는 사랑놀이의 경박함과 덧없음을 비로소 증명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두려워하며 참지 못하는 마지막은 시쳇말로 ‘잠수’하거나 ‘동굴’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식의 도피였다. 연락 두절, 바로 어제까지도 시시콜콜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알았던 사이가 갑자기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타인과 같은, 어쩌면 타인보다 못한 관계.


 그것이 끔찍하게 싫어 나는 당신에게 이별을 졸랐다. 도무지 그것을 견딜 수 없어 사랑이 끝나기도 전에 이별을 통보받길 바랐다. 그리하여 당신은 내가 원하는 대로, 보채고 다그치는 대로, 묻는 대로 대답했다. 에너지가 없다고, 한바탕의 헛된 봄꿈을 더 이상 배겨 낼 힘이 없다고, 나는 실소하며 당신을 비난했다. 화가 난다기 보다 실망했다고 쏘아붙였다. 비겁은 참을 수 없다고, 어쨌거나 그동안 고마웠다고 입술을 감쳐물고 싸늘하게 돌아섰다.


 실없는 연애담 따윈 여기서 끝내야 한다. 시인 박용하의 진언대로, 흘러간 것은 물이 아니라, 흘러간 물이다. 가끔 떠오르면 얼마간 쓸쓸히 웃어넘기기에 족하다. 나는 이미 인간의 가장 어리석은 짓 중의 하나가 원망과 복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한때나마 사랑한다고 믿었던 상대에 대한 가장 좋응 용서이자 복수는 깨끗이 잊어주는 것이라는 것도 깨닫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다시 사납고 세차게 당신을 미워한다.

내가 진정으로 조르고 보채며 다그쳤던 것은 선명하여 일체의 의심도 회의도 없는 이별이 아니었던 게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진실보다 헤어지지 않으리라는 거짓을 바랐던 게다.


 나는 내게 거짓말을 하지 못했던 당신을 미워한다. 미워하기에 잊지 못한다. 잊지 못해 여전히 미워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 그리고 완전한 망각이므로, 너절하게 끌려 흙투성이가 된 채로 내 발걸음을 끈질기게 좇는 풀린 신발 끈처럼, 나는 좀처럼 당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만 같다.


김별아 / 소설가(좋은생각 2007.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