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자(le meme)/타자(I'autre)
사전은 수많은 정의(定義)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국어사전은 우리말에서 사용하는 낱말들의 정의를 수록하고 있으며, 백과사전은 학문과 시사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의 정의를 수록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사전에서 나오는 정의는 매우 엄정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사전은 무수한 의미들을 정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수한 의미들을 누락시킨다.
정의의 배후에는 배제가 있다. 예를 들어 국어사전에서 ‘행복’의 정의를 찾아보면 “생활의 만족과 삶의 보람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라고 되어 있는데, 이 정의에 의거하면 민족을 위한 희생이나 종교적 순교는 행복에서 배제된다.
또 백과사전에서 ‘예술’이라는 용어를 찾아보면 “작품의 창작과 감상에 의해 정신의 충실한 체험을 추구하는 문화 활동”이라는 정의가 나오는데, 이에 따르면“정치는 수백만 명의 운명을 결정하는 고도의 예술”이라는 명제는 성립되지 않는다.
한 개념이나 용어를 특정한 의미로 고정시키면 그 의미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내용은 모두 배제되게 마련이다. 그 결과
선택된 것은 동일자가 되고 배제된 것은 타자가 된다.
미셀 푸코에 따르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배제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지식 체계다. 지식의 주요 기능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대상에 관해 뭔가를 가르쳐주거나 정보를 주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한 대상과 다른 대상의 차이를 규정하고 서로 구분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지식은 대상에 관한 정의를 내리며, 그 정의가 가져오는 구분은 필연적으로 배제를 낳는다.
문제는 지식 체계가 누적됨에 따라 배제도 점점 쌓인다는 점이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듯이 지식의 봉우리가 높아질수록 지식에서 배제되는 것도 지식의 그림자처럼 길어지고 짙어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들리는 것은 항상 동일자의 목소리뿐이고 타자의 목소리는 감춰지게 된다.
동일자는 드러나 있기 때문에 알기 쉽지만 동일자에 의해 배제된 타자는 숨겨져 눈에 잘 뛰지 않는다. 동일자는 늘 주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반면에 타자는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시된다. 그래서 역사는 동일자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서술된다.
더구나 그것은 역사의 반쪽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마치 역사의 전체인 양 포장된다.
그런 진행을 거부하고 역사를 온전히 복원하기 위해서는
숨은 것의 역사. 침묵한 타자의 목소리를 드러내야 한다.
남경태/개념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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