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원형(Archetype)

송담(松潭) 2006. 12. 1. 18:01
 

원형(Archetype)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비슷한 구조를 가졌다. 구약성서에는 노아가 겪은 홍수가 나오고, 수메르 신화에는 홍수에서 살아남은 우트나피시팀이 등장하며, 중국의 신화에도 대홍수가 지난 뒤에 여와라는 여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과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동북아시아의 공통적인 신화라지만 그리스 신화에도 아이테르와 카오스가 알을 낳았고 거기서 광명의 신 파네스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는 건 무슨 연관일까? 오이디푸스 신화로 대표되는 근친상간의 신화가 그리스만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와 유럽 게르만족에게 두루 발견되는 이유는 뭘까?


 신화나 전설의 내용이 사실인가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이미지가 반복된다는 것은 그 배후에 뭔가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많은 사본이 존재한다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모종의 원본이 있다는 뜻일까? 스위스 심리학자인 칼 융은 그런 원본을 원형이라고 부른다.


 원형은 인간의 심리에 내재하는 역사적이고 집합적인 기억의 본질이다. 개인의 기억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일종의 초인격적 심리구조라 할 수 있다. 인간 개인은 이 원형을 거부할 수도 없고 변화시킬 수도 없다. 기억이 무의적이라는 말은 일종의 형용모순 같지만 원형은 무의식적 기억이다.


 융에 의하면 인간의 원형은 다른 동물의 본능에 해당한다. 태어나자마 걷는 사슴이나 알에서 나오자마자 바다를 찾아가는 바다거북에 비해 갓 태어난 인간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아기는 제 몸조차 추스르지 못하며, 인간사회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우기까지 무려 20년 가까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원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본능을 가진 동물을 능가하는 존재가 된다.


 원형은 무의식이지만 개인의 정신 속에 있는 개별 무의식과는 다르다. 그런 무의식을 지칭하기 위해 융은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것은 원형이라는 기억을 소자(素子)로 삼아 만들어진 무의식이다. 옛날에 살았던 조상들이 경험한 집단적인 기억이 원형으로 보존되어 집단무의식을 형성한다. 융은 이 과정을 건축에 비유한다. “집단무의식의 구조 안에는 인간 심리의 원형적 건축자재들이 저장되어 있으며, 인류 전체에 관한 집합적 기억이 축적되어 있다. 각기 다른 문화와 시대에 있었던 상징, 이미지, 신화 등이 놀랍게도 비슷하다는 사실이 그 점을 증명한다.”


 생물학자들은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큰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그렇기 때문에 출산의 진통을 겪는 동물은 인간의 여성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아기의 머릿속에는 원형이 어떤 형태로든 - 예를 들어 유전자의 형태로 - 기억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복잡한 손놀림, 두 발로 서는 행위, 추상적 의미를 담은 언어 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능력이지만 한 세대에 완전히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무의식이 인간 개개인에게 전달된 덕분이 아닐까? 진화론은 집단무의식이 변화되는 과정을 설명한 게 아닐까?





아니마/아니무스


 어떤 면에서 남성과 여성은 신체적 차이 이외에 다른 점이 없는 듯하다. 일부 극단적인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성의 차이란 단지 사회적 역할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이론을 입증하려면 그 사회적 역할의 차이가 왜 생겨났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 기원이 반드시 생물학적 차이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겠지만 성적 차이가 신체적 차이와 큰 관련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성적 차이가 성적 차별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또 다른 잘못이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는 외양 이외에 염색체와 호르몬의 종류에서도 나타난다. 남성을 결정하는 염색체는 XY이고 여성을 결정하는 염색체는 XX다. 또 남성을 남성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고 여성을 여성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에스트로겐이라는 호르몬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구분이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점이다.


 인간의 염색체 23쌍 가운데 남성과 여성은 22쌍이 같고 나머지 하나 성염색체만을 다를 뿐이다. 그리고 테스토스테론은 여성에게도 미량이 생성되며, 남성도 에스토로겐을 약간 분비한다. 신체만이 아니라 심리와 성격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는데, 그 점을 설명해주는 개념이 아니마와 아니무스다.


 심리학자인 칼 융은 남성의 심리에 있는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 여성의 심리에 있는 남성적 요소를 아니무스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원래 ‘영혼’, ‘삶의 호흡’, ‘움직이는 것’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 속하며, 주로 꿈속에서 반대 성의 인물이나 이미지로 인격화되어 나타난다.


 아니마/아니무스는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처음으로 접하는 이성인 어머니/아버지가 근원이 되지만 여기에는 유전적인 메커니즘도 작용한다. 여성(남성) 대한 종족적인 관념, 여성(남성)에 대해 남성(여성)이 과거에 겪었던 경험이 인격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아니마/아니무스는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지나치게 조장되면 성적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으며, 반대로 지나치게 억압되면 성적 일탈로 나아가거나 정서적으로 미성숙해질 수 있다.


 융은 자신의 내부에 여성적인 요소를 가지지 못한 남성, 남성적인 요소를 가지지 못한 여성은 결코 전적으로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일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든 남성은 자신의 내부에 여성의 영원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 그것은 여성에 관한 모든 조상들의 경험이 각인된 ‘원형’이며, 여성이 항상 만들어내는 그 모든 인상들의 축적물, 요컨대 물려받은 심리적 적응 체계다.”


 남녀 간의 사랑을 촉발하는 것도 아니마/아니무스다. 사랑이 시작되는 계기는 남성(여성)의 아니마(아니무스)가 상대방 여성(남성)에게 투사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투사의 정도가 지나칠 때는 문제가 된다. 그 경우에는 아니마/아니무스가 아모시티(증오)로 바뀌면서 서로 상대방 이성에게서 무의식 특유의 불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남성은 아니무스가 덜 드러나는 여성에게, 또 여성은 아니마가 덜 발달한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 반대의 취향이면 동성애로 발전할 소지가 크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터프가이가 슬픈 멜로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든가, 늘 보살펴줘야 할 만큼 여린 심성의 여성이 위기의 순간을 맞았을 때 강인한 결단력을 보이는 것은 아니마/아니무스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이성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성적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다.


남경태/개념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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