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칼럼, 정의

바보들의 행진, 바보의 역사

송담(松潭) 2025. 5. 9. 05:30

바보들의 행진, 바보의 역사

 

 

난득호도(難得糊塗)란 똑똑한 척하기보다는 바보처럼 보이기가 더 어렵다는 뜻이다. 난세에 대처하는 중국식 처세술의 고급 표현이라고 한다. 청나라 중기의 문인이자 화가인 정판교(鄭板橋·1693~1765)의 말이다.

 

물론 바보들은 많다. 나는 누구인가 질문 한번 안 해본 자, 자기가 실은 바보인 줄을 모르는 바보야말로 진짜 바보인 줄을 바보들만 모를 뿐이다. 소년 급제하여 법대 위에 군림하다가 법에 취해 땅 디딜 줄 모르는 자들, 걸어다니는 헌법기관임을 자부하면서 거들먹거리기가 취미이거나 특기인 자들도 그 축에 포함될 것이다. 공당의 후보를 뽑아놓고 스스로 내팽개치며 그 당을 주물럭거리는 쌍바보들도 여기에 추가한다.

 

바보들은 모두 텔레비전에 우글거린다고 누가 일갈했다는데, 요즘 방송과 신문에 그들의 행각이 고스란히 중계되고 길이길이 저장된다. 바보들의 행진, 지켜보는 씁쓸함은 누구의 몫인가.

 

한편 바보가 바보라서 바보이겠는가. 바보들이 수두룩하지만 이런 바보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바보의 역사는 유구하다. 바보 온달로부터 시작한 그 역사는 오래고도 오래다. 강물에 반짝거리는 것들 많지만 그 강을 떠받치는 건 물살에 닳은 바보 같은 바닥의 돌들.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도, 노무현 대통령도 스스로 바보임을 자처했고 같은 바보와 기꺼이 함께했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바보가 있다.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온몸으로 체득한 노동 현장의 열악함과 부조리를 깨닫고, 친구들과 노동조직을 만들어(1969년 6월26일) 그 이름을 ‘바보회’라 했던 사람. 후배 여공들에게 저녁을 사주면서 정작 본인은 한 술도 안 뜨길래, 왜 너는 바보처럼 안 먹느냐는 주인한테, 나는 먼저 먹었다고 동생들한테 말했기에 다시 먹을 수 없노라고 슬픈 거짓말을 했다는 바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48~1970).

 

그제는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다시 보았다. 바보처럼 또 반복되는 어느 한 대목. “우리 같은 사람들이 뭘 어떻게 해, 그냥 바보같이 사는 거지”라는 자조에 전태일은 말한다. “바보짓을 해서라도 바꿔야지.”

 

바보들 따위가 바보를 흉내라도 내겠는가. ‘바꾸어 보는’ 이요 ‘바로 보는’ 이의 준말인 바보.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2025.5.9 경향신문)

 

< 2 >

 

매몰(埋沒)

 

 

‘매몰’ 연작 중에서. 2012. ⓒ김지연

 

 

어린 시절 같은 마을, 혹은 이웃 마을 사람들 사이에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마을에는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많았다. 반란군, 빨갱이, 경찰 그런 낱말들만 들렸고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증오는 자식대까지 물림을 받아 서로 치고받고 했다.

 

1948년 4월3일, 제주도에서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미군정에 저항하기 위한 무장봉기가 남로당 제주도당 주도로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군 병력을 투입해 사태를 진압하려 했으며, 같은 해 10월11일에는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 중이던 국군 제14연대에 진압 출동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14연대 소속 일부 병사들이 이에 반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처럼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무력 충돌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정부는 토벌대를 조직해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을 좌익으로 간주하고 무차별적인 색출과 학살을 자행했다. 이승만 정부와 미군정은 반란에 가담했거나 협조했다는 의심만으로 주민들을 처형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양민이 희생됐다.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경계에 있는 순창에서 담양으로 이어지는 낯익은 국도변에 ‘한국전쟁 전후 양민 피학살자 매몰 지역’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주변을 촬영할 때만 해도 이것은 과거의 국가 폭력 사건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12·3 내란을 TV 중계로 지켜보았고, 지금도 숨어 있는 국가 폭력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는 증거로 대법원 쿠데타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지귀연 판사와 심우정 검찰총장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석방하는 황당한 사법쇼를 자행했다.

 

내란 세력이 야합해 대통령 후보를 내세운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제1당 유력 후보를 법의 외피를 쓴 정치적 술수로 제거하려 한 대법관 10명의 판단은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다. 각 부처는 헌법에 따라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행정부는 행정부답게, 입법부는 입법부답게, 사법부는 사법부답게 처신하라. 국민을 인질로 삼아 권력을 휘두르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 대한민국은 정치보다 국민이 더 성숙하다.

 

김지연 / 사진작가(2025.5.9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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