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칼럼, 정의

이 괴물 엘리트들을 어찌해야 할까

송담(松潭) 2025. 4. 24. 06:05

이 괴물 엘리트들을 어찌해야 할까

 

 

“너무나 이상한 일을 많이 하는데, 자기들끼리 싸여 있다 보니 자신들이 얼마나 이상한지 판단을 못하는 것 같아요.” “몇달 동안 그자들의 민낯이 얼마나 초라한지 분명히 알게 됐죠”

 

지난 주말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 ‘경향티비’를 보다가 고개를 몇번이나 크게 끄덕였다. 주제는 ‘시험권력’ 고시 엘리트들의 종말. 내란 사태가 드러낸 엘리트 관료, 정치인들의 민낯을 보며 내가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짚어줘서였다.

 

3년도 안 되는 기간, 윤석열 정부의 어이없는 실책 릴레이와 비현실적인 친위 쿠데타, 그로 인한 자멸로 치러지는 조기 대선이 40일 앞으로 다가왔다. ‘엘리트’라는 관점도 주목해야 할 핵심 포인트 중 하나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엘리트’를 ‘사회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사람. 또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한 우익 언론은 칼럼을 통해 ‘엘리트 리더’의 등장을 콕 집어 찬양했다. “윤석열의 등장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가정 환경과 전문 교육을 바탕으로 한 엘리트들이 리더로 부상(浮上)한 일이다. (중략) 윤 대통령은 대학교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70년 건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서울대를 제대로 나온 대통령이 됐다. (중략) 이것은 우리나라의 지도자상(像)을 정상화하는 의미가 있다.”

 

지금 보면 실소가 나온다. 3년간 윤석열과 그 주변 엘리트들이 곳곳에 얼마나 끔찍한 진창들을 만들어놨는지, 그 그림자들이 얼마나 길게 드리워 있는지 우리는 모두 목도했다. 각종 외교 참사와 공천개입 의혹, 끝을 알 수 없는 의료대란과 R&D 예산 삭감, 수없는 ‘입틀막’, 소위 ‘이채양명주’라는 권력형 시리즈 비리 사태, 급기야 내란·탄핵 사태까지. 대통령의 한마디에 소신 없이 맞장구친 엘리트 관료들의 합작품이다.

 

이런 엘리트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 사회 교육 현실에 쓴소리를 해온 김누리 중앙대 교수(<경쟁교육은 야만이다> 저자)는 최근 언론에서 “한국 사회의 지배 엘리트는 대다수가 ‘또 다른 윤석열’”이라며 “근원으로 거슬러가면, 윤석열을 키운 것은 극단적인 능력주의 경쟁교육이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교실’이 괴물 윤석열을 잉태한 모태”라고 질타했다. 이에 동의한다.

 

최근의 기사들을 보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다. 더 놀아도 부족할 나이에 7세, 4세 고시라는 말이 나온다. 영유아, 초등학생 대상 유명 학원의 레벨 테스트를 일컫는 말이다.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일찍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해 명문대에 입학하고 또 다른 윤석열, 또는 윤석열 주변의 지배 엘리트들로 커주길 기대해서다.

 

극단적인 조기 경쟁교육은 ‘세상에 이런 일이’ 식으로 외신의 주목을 받았고, 교육시민단체에선 이를 ‘아동학대’로 규정해달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학대’ 외의 이름이 없다. 걷기와 동시에 경쟁을 내면화하는 아이들이 어떤 어른이 될지 자명하지 않은가. 끔찍하다.

 

2022년의 칼럼은 계속 이어진다. “우리는 비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최고에 이르는 것을 두고 ‘개천에서 용(龍) 난다’고 한다. 과거에는 통했다. 이제는 아니다. 이제 용은 개천을 뚫고 솟아나는 것이 아니고 시스템에 따라 교육받아야 한다. 자기만 잘나고 똑똑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주변이 모두 똑똑한 환경에서 같이 자라야 부정(不正)을 배격하고 공정을 배운다. 이제 대한민국도 그런 시스템을 가질 자격이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한마디로 소위 집안, 학벌 좋은 엘리트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자는 얘기다. 내란 사태의 와중에도 각종 꼼수가 등장하고, 반성의 말 한마디 없이 다른 엘리트를 추대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 권력의 편에서 영향력을 계속 누리겠다는, 왕당파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미국 정치학자 마이클 존스턴은 저서 <부패의 증후군>에서 국가 부패 유형을 4가지로 나누며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의 대표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 각계 고위층 인사들이 밀접하게 연결돼 이익을 독점하는 형태의 합법적 부패를 가리킨다. 현재의 내란 사태는 한국 사회의 부패 증후군이 곪아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뜻밖의 소득이 있다면 어렴풋이 짐작만 하던 권력 엘리트들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은 다신 괴물 엘리트들에게 권력을 줘선 안 된다는 것, 괴물 엘리트들을 양산하는 시스템과 교육을 바꾸고자 하는 다짐에서 치러져야 한다. 부패가 곪아 터진 그 자리에 새살이 돋아나게 해야 한다.

 

일신의 안전과 사리사욕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용감하게 증언한 김형기 특수전사령부 제1특전대대장,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등에게서 희망을 본다. 경쟁 대신 공동체, 함께 잘 사는 길을 고민하는 새로운 엘리트들의 부상을 꿈꾼다.

 

 

송현숙 / 후마니타스 연구소장 · 논설위원

(2025.4.24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