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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생과 ‘공공미술’

송담(松潭) 2024. 12. 26. 06:06

도시 재생과 ‘공공미술’

 

 

‘도시 재생’이란 1차적으론 쇠퇴한 지역을 개선하여 물리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도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도시(지역)를 만들자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사회·경제·환경·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촉진함으로써 도시와 인간 삶의 가치를 새롭게 극대화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도시 재생의 최근 개념은 도시의 역사적 의미와 인문학적 범주는 물론, 개발이 아닌 재생의 관점에서 행해지는 새로운 환경적·공간적·문화적 생태까지 아우른다. 그리고 공공의 장에서 대중과 시대적 사안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촉매로서의 가능성을 안은 공공미술은 그 인문학적, 미학적 가치와 의미를 촉발하는 데 있어 중요 매개임을 의심받지 않는다. 특히 공공미술에 내재된 ‘문화적 공공성’은 예술과 삶에 대한 근본을 묻고 사회적 문제에 관한 대안 제시를 통해 문화적 어젠다 창출을 주요 영역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도시 재생이 추구하는 도시와 지역사회 활성화에 가장 부합하는 장치다. 이처럼 공공미술은 인류가 대응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도시공간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자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과 쟁점이 교차하는 사회적 소통의 매제(媒劑)란 점에서 도시 재생의 필연적 요소다.

 

하지만 우리나라 도시 재생과 공공미술은 따로 논다. 도시 재생의 일환으로 예술가들에 의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생성되곤 하나 시민 참여율은 저조하고, 시행의 한 축인 지자체는 아예 공공미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그러다 보니 도시 재생에 있어 공공미술 또한 그저 도시 환경미화를 위한 도구에 그친다.

 

외국은 다르다. 예를 들어 도시 재생 운동의 선두주자인 프랑스는 그랑 프로제라는 문화예술시설 확충정책으로 낙후된 지역을 문화예술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 도시 재생 사업과 함께 시작된 잉글랜드 북부의 옛 탄광도시 게이츠헤드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시각의 영역을 넘어 예술작품을 매개로 한 대화와 경험이 다시 도시 재생으로 이어진 경우다.

 

이 밖에도 옛 벵센 철도 위 공중정원 프롬나드 플랑테를 비롯해, 전통 산업인 탄광업의 쇠락으로 도시가 슬럼화되자 예술을 입혀 도시 재생형 문화도시로 거듭난 독일의 도르트문트, 버려진 섬에 예술의 옷을 입혀 세계적 문화예술의 성지로 거듭난 일본의 나오시마 프로젝트 등도 도시 재생과 공공미술에 있어 중요한 표본이다. 독일 북부의 작은 도시 뮌스터 역시 전후 기력을 상실한 도시를 공공미술로 재생시킨 예로 유명하다.

 

현재 한국은 곳곳에서 도시 재생 사업을 하고 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삼켜버린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의 여파는 여전하지만 다행히 큰 차질 없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상권 개발, 관광 특화 등을 목표로 한 ‘행정사업’일 뿐 노동과 정서, 자본과 계급 문제 등의 ‘환경과 인간 삶의 질’까지 끌어안는 기획과는 거리가 있다. 도시 재생에 반드시 요구되는 인문학적, 사유적 측면을 옹호하려는 노력조차 희미하다. 공공미술은 단지 심미적 수단에 머물기 일쑤다.

 

낙후 지역을 물리적으로 변경하는 것이 아닌, 보다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데 부응하는 것, 그것이 도시 재생에 있어 공공미술의 역할이다. 앞서 거론한 선진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도시학에 예술을 버무린 결과물이 도시 재생이며, ‘무엇을’ 만드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서 시작하여 지자체와 시민, 예술가들의 논의와 협업으로 매듭짓는 것이 도시 재생, 공공미술임을 기억해야 한다.

 

홍경한 / 미술평론가

(2024.12.26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