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칼럼, 정의

‘법조 공화국’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

송담(松潭) 2021. 11. 17. 15:53

‘법조 공화국’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

 

 

 

한국은 민관 합동으로 세운 ‘법조 공화국’이다. 고소·고발과 ‘정치의 사법화’가 왕성하게 일어나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나라가 아닌가. 법을 사랑하지 않으면 대통령 되기도 힘들다. 지난 6월 중앙일보는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의 상위권을 법과대학 출신 정치인이 싹쓸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이재명, 이낙연, 홍준표, 추미애, 최재형이 그러하며, 이외에도 정세균, 이광재, 원희룡, 황교안 등 죄다 법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어떤가? 대부분 법대를 나온 법조인 출신이 16대 국회 41명, 17대 54명, 18대 59명, 19대 42명, 20대 49명, 21대 46명 등 늘 전체 의원의 15~20%를 차지해왔다. 너무 많지 않은가? 그럼에도 정당들은 인재 영입 시 법조인을 우대하는 걸 어이하랴.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2월 총선을 앞두고 외부인사를 영입했을 때 전체의 약 30%가 법조인이었다.

 

왜 그러는 걸까? 전반적인 사회체제의 보수화(또는 안정화), 유권자의 학력·학벌 우대 풍토, 그리고 정치 진입·탈퇴 시 법조인이 누릴 수 있는 호구지책의 비교 우위를 들 수 있겠다. 이 마지막 이유가 중요하다. 법조 출신 정치인은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선거에서 낙선해도 언제건 변호사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다른 전문 직종이나 직업을 가진 사람은 비교적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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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대표 홍준표는 ‘법조인 공천 축소’를 내걸면서 “서민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고, 현장의 치열함을 모르고, 제가 잘난 탓에 국민과 소통하는 데 부족하다”고 했다. 자신이 검사 출신임에도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이른바 ‘법조 마인드’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시사해준다. 2년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양권모는 “타협이 생명인 정치와 만사 ‘법대로 하겠다’는 데 익숙한 법조인의 속성은 본디 부조화적이다”라고 했다. 전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유승민은 “법조인이라는 분들은 평생 과거에 매달리는 분들인데, 우리는 지금 미래를 만들어가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한 말일망정, 새겨들을 점은 있다.

 

17년차 검사 정명원은 최근 출간한 책에서 사법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오직 공부를 향해서만 진격해온 법조인들에겐 ‘좁게 집중적으로 보기’라는 성향이 있을 가능성과 그 위험에 대해 말한다. “기본적으로 단호함과 성실함을 탑재한 법조인들이 무언가에 대해 확고한 기준을 갖는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새 어떤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은 무서운 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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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마인드’의 문제는 앞으로 계속 고민할 가치가 있는 사회적 의제이지만,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특정 집단의 속성을 곧장 그 집단에 속하는 개인에게 적용하려고 드는 ‘통계적 차별’일 게다. 통계적 차별은 단순히 편견이라고 할 수 있는 ‘선호에 의한 차별’과는 달리,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갖지 못했을 때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특성을 고려해서 판단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나는 그런 ‘통계적 차별’을 거부한다. 그래서 문재인이 국민과 소통하는 데 부족했고, 타협을 거부했고, 과거에 매달렸고, 좁게 집중적으로 보는 성향을 드러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해도 그게 법조인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진 않다.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로 결정된 이재명과 윤석열이 ‘법조 마인드’의 부정적인 면을 드러낼 것이라고 믿고 싶지도 않다. 내가 믿고 싶은 건 대통령의 특정 마인드가 국정운영에 미치는 영향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 건설이며, 현 시점에선 후보의 소통 품성이라도 따져보는 일이다.

 

정치학자 장훈은 내년 대선의 관건은 초(超)대통령제의 해소라고 주장한다. “기왕에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이 있지만, 지난 10여년 한국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을 넘어 슈퍼맨 대통령이 이끄는 초대통령제로 변화해왔다. 대통령은 국회와 사법부 위에 우뚝 선 초월적 권력으로 어느덧 변신하였다. 대통령은 또한 시민 자유의 범위, 내용을 결정하고 정치적 올바름을 정의 내리는 철인왕으로 올라섰다.”

 

장훈은 “초대통령제라는 위태로운 흐름을 멈춰 세우기 위해, 후보들의 정책보다는 성품에 주목할 것이다”라면서 세 가지 체크 리스트를 제시한다. “후보들은 마음을 열고 두루 듣는 자세를 지녔는지? 민주 정치의 일상사인, 언짢은 이견을 계속 수용할 참을성과 도량을 갖췄는지? 단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겸손함을 체득했는지?” 나 역시 이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후보들이 이 덕목을 놓고 경쟁하는 대선이 되기를 희망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2021.11.17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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