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칼럼, 정의

제헌절(制憲節)을 맞이하며

송담(松潭) 2021. 7. 16. 19:59

제헌절(制憲節)을 맞이하며

 

지 교 헌

 

 

아직도 코로나19가 창궐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불안한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안정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기업인들은 기업인들대로, 서민들은 서민들대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고충을 감내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뎌 나가고 있다. 이러한 불안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나도 휩쓸려 하루하루가 괴로울 뿐이다.

 

무심코 달력을 바라보니 7월 17일이 제헌절이다. 제헌절은 문자 그대로 헌법(憲法)을 제정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헌법은 광의로 해석하여 국가조직법이요 인권보장법이라고 볼 수도 있고, 협의로 해석하여 국가의 기본질서를 규정한 법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근대적 입헌주의적 헌법은 국가권력의 조직과 제한에 관한 근본적 규범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기본권의 보장과 복지주의를 핵심으로 보기도 한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국가는 헌법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일정한 형식을 갖춘 헌법전(憲法典)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헌법의 기능을 발휘하는 법규범을 가지고 있다. 영국은 단일 헌법전(Constitution of the United Kingdom)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영국의 의회나 재판의 관행, 왕위계승법과 같은 것이 영국의 헌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헌법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고 1948년 5월 10일에 실시한 총선거를 통하여 삼권분립제, 국민의 기본권보장, 대통령중심제, 단원제국회 등을 골격으로 하여 제정되었다. 그리고 1952, 1954, 1960, 1962, 1969, 1972, 1980, 1987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의 개정을 거쳐 왔다.

 

헌법 전문(前文)은 (1)연혁, (2)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정통성, (3)민족단결과 정의·인도·동포애의 실현, (4)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 (5)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다시 부연하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성(法統性; Legitimacy)과 4·19민주이념의 계승, 민족단결의 공고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 각인의 기회 균등,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 완수,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공헌,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나는 여기서 헌법이 보장하고 요구하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하여 다시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우선 국민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않으며(평등권),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직업선택의 자유나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자유권), 국가의 정책이나 정치에 참여하며(참정권),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국가에 대하여 청구하는 권리(청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사회권)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위와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국민으로서 이행해야 할 의무도 있다. 첫째는 교육의 의무이다. 우리 헌법에서는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으로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다운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도로 초등학교의 교육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보호자]은 법령의 절차에 따라 자녀를 취학시킬 의무를 갖게 된다.

 

둘째는 근로의 의무이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부한 환경에 있더라도 국민은 마땅히 자신과 사회와 국가를 위하여 근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근로자의 고용과 적정임금의 보장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셋째는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봉건시대라고 할 수 있는 전근대사회에서는 일반 국민의 국방의무보다는 귀족계급의 국방의무와 용병제도(傭兵制度)가 중요하였지만 근대사회에서는 국민개병제도(國民皆兵制度)와 더불어 국민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국토방위의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병역법>에 의하여 일정연령에 도달한 남자에게만 법을 적용하여 필요한 절차에 따라 군인이 되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역병 복무를 마치고 나면 다시 <향토예비군설치법>에 의하여 예비군으로 복무하게 되고, 현역병과 예비역으로 복무가 완료되더라도 <민방위기본법>의 적용에 따라 방공이나 응급적 방재나 구조 복구 및 협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위치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Conscientious Objectors to the Military Service)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어 그들에게는 사회적 봉사활동으로 병역의무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현역병으로 복무하지는 않더라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국방을 위한 봉사에 복무해야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과거에 특수한 전문분야에 복무하던 이른 바 ‘후방요원’복무제도나 ‘정교사’복무제도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국민이 국토방위의 의무를 가진다는 것은, 이를테면 외국인이 미국에서 시민이 되기 위하여 이민을 신청할 때에는 그 당사자의 성별이나 연령이나 직업을 불문하고 -실지로 병역에 복무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는 집총한다.’는 서약이 필수였다는 사실이 하나의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넷째는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할 의무가 있다. 이를테면 하찮은 쓰레기를 버리는 일에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잘 분리하고 그 버리는 규칙과 요령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오염의 문제는 산업화가 일찍이 촉진된 선진국에서 먼저 야기되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국가에서 야기되는 문제이며 인류의 앞날을 위협하는 대재앙을 방지하는 문제이다.

 

다섯째는 국가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세금의 납부는 아득히 먼 봉건사회에서도 있었던 것이며 그 조세제도가 불합리하고 과중할 때에는 민생에 위협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가렴주구(苛斂誅求)와 같은 현상이나 또는 국민의 조세저항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국가는 합리적인 조세제도를 확립하고 국민의 납세의무를 기대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밖으로는 국가와 민족의 독립을 위한 혁명투쟁과 안으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혁명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명백히 밝힘으로써 세계의 어느 나라 헌법에도 못하지 않은 훌륭한 헌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위대한 헌법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위대한 혁명정신과 자주정신이 빛나는 냉철한 판단과 예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대한 헌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시행착오를 범하기도 하고 국민으로서 행사해야 할 권리와 의무를 정정당당히 행사하고 이행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제헌절을 맞이하며 대한민국은 과연 어떻게 건설된 국가이며 어떠한 정치를 지향하고 있는 국가이며, 나는 국가를 위하여 어떻게 봉사하였으며 앞으로 어떻게 봉사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성찰은 국민생활에 영향력을 미치는 고위공직자일수록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한자(漢字)로 ‘法’(법)이라는 글자에는 해태를 가리키는 ‘廌’(해태 치)란 글자가 들어 있었다. 해태는 바르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한 것을 물리치는 상상적 동물이기 때문에 수평(水平)과 같이 공평하고도 바르게 하는 뜻을 본질로 한다. -국회의사당 앞에 해태의 석상(石像)이 세워진 것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법이라는 글자는 형벌이나 규제나 제한을 뜻하기도 하고 제도나 경상(經常)이나 준칙이나 모범이나 예법이나 모형이나 모식(模式)이나 도량형과 같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사용된 언어이고 문자이다. 그리고 헌법은 위와 같은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되는 모든 법규범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적이고도 높은 위치에서 기능하는, 국가의 최고수준에 있는 법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모든 법률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며 모든 국민은 헌법을 수호하고 법률을 준수하는 데 유감이 없어야 할 것이다.

(2021.07.17.)

-------------------

지교헌

<월간수필문학>등단. 한국수필문학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