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송담(松潭) 2021. 2. 5. 06:45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4일 덕수궁서 개막

 

 

이중섭의 ‘시인 구상의 가족’(1955, 종이에 연필·유채, 32×29.5㎝,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55년 1월. 일본에 있는 가족과 다시 만날 날을 꿈꾸던 이중섭은 개인전이 경제적 실패로 돌아가자 가족과의 재회를 포기할 정도로 절망에 빠진다. 거처마저도 마땅 찮았다. 정신적·육체적으로 고단하던 때, 그래도 든든한 버팀목은 오랜 친구인 시인 구상이었다. 작품 ‘시인 구상의 가족’은 그가 구상의 왜관 집에 머물 때 그린 것이다. 구상이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 태워주는 모습을 몹시 부러워했을 이중섭은 화면 한 쪽에 연약한 자신의 옆 모습을 그려 넣었다.

 

1934년, 시인 이상은 서울 종로에 다방 ‘제비’를 열었다. ‘살롱 문화’를 낳은 프랑스 파리의 살롱들처럼 제비 다방은 당대 문화예술인의 사랑방이 됐다. 벽에는 이상의 절친 구본웅의 작품 등 화가들의 그림이 걸렸고, 문학인과 미술인·음악인 등 예술가들은 하나로 어우러졌다.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은 당시 이상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1년 봄,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는 잡지 <문장>의 편집 실무자였던 조풍연의 결혼식이 열렸다. 가난한 화가들이 마련한 선물은 각자의 그림을 엮은 두툼한 화첩이다. 김환기를 비롯해 길진섭·김용준·김규택·정현웅·윤희순·이승만 등의 작품이 실린 <조풍연 결혼 축하 화첩>이 바로 그것이다.

 

격동의 근현대 시기, 글을 짓는 문학인과 그림을 그리는 미술인들은 글과 그림의 경계를 훌쩍 넘어 뜨거운 교감을 나눴다. 문자와 이미지라는 표현방식은 달랐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 시대와 삶을 예민하게 감각하는 예술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지적 연대감 속에 서로의 예술혼을 자극시키고, 영감을 주고받으며 당대의 문화예술을 보다 풍성하게 가꿔낸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첫 기획전으로 마련, 4일 덕수궁관에서 개막하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1930~1950년대 전후 미술과 문학이 만난 문화예술계 풍경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미술과 문학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미술인과 문학인들의 끈끈한 교류, 나아가 그들이 남긴 다채롭고 풍성한 글과 그림 등 예술적 성과물을 조명하는 것이다. 전시장에는 새로 발굴한 자료를 포함해 무려 600여 점이 넘는 전시품이 나왔다. 예술인들의 개인적 교류와 관계는 물론 그들의 정신적·예술적 교감의 상징물이기도 한 작품들이다. 회화 140여 점을 비롯해 시집과 잡지 원본 등 희귀한 서지 자료 200여 점, 관련된 각종 시각자료 300여 점 등이다.

 

문학과 미술, 음악 등 경계를 넘어선 예술가들의 예술적 교류는 역사적으로 시공을 초월해 치열하고도 끈끈하게 이어져왔다. 물론 지금도 계속되면서 이 시대 문화를 다채롭게 그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은 “이번 전시는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 도전했던 근대기 미술인·문학인들이 함께 만들어낸 소중한 자산을 발굴·소개한다”며 “비록 가난하고 모순으로 가득찬 시대 속에서도 정신적으로 누구보다 풍요로웠던 예술가들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인혜 큐레이터는 “미술품 중심의 기존 전시와 달리 시집·잡지 등 서지 자료들도 많다보니 보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꼼꼼한 감상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전시는 5월 30일까지.

 

(2021.2.4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