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Best 20

아름다운 마무리

송담(松潭) 2020. 12. 29. 06:16

 

아름다운 마무리

 

 

 

 세월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삶이어야 한다

 어느 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있으랴만

 

 새벽 가로등 불빛 아래 하염없이 내리던 함박눈

 내겐 특별한 그가 그리워진다.

 

 지금껏... 삶의 향기를 뿜어내지 못한 나는

 조금씩 추워지고 겨울이 다가오면

 몸살처럼 한동안을

 온몸으로 앓곤 한다

 

 겨울 아이로 태어난 내가

 그를 만나는 것이

 아직도

 어렵고

 가슴 떨리는

 조심스런 긴장감 탓일까?

 

 벌써

 봉화엔 겨울 올 채비를 한다.

 나 역시

 그를 만날 준비를 한다

 

 곧

 솜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는 내게 오겠지

 아무런 소리도 없고

 발자욱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에게 발자욱을 남길 뿐이다

 

 나는

 눈사람을 만들테고

 길을 트기 위해 빗자루질도 할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내게 머물지는 않는다

 그는

 또

 소리없이 나를 떠날 것이다.

 스르르 녹아내려 땅으로 흘러들어

 내가 될 것이다

 

 내가 되어 흘러흘러 강이 될 것이고

 바다가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큰 바다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하얀 함박눈으로 내게 올 것이다.

 

 그의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그에게로 가는 길

 

 조금씩 설레임이 더해 간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그가 나를 만나러 오는 길

 

 이 길 끝에 그가 서 있다

 온 산을

 온 들을 품어 줄

 넉넉한 가슴으로 나를 감싸 안아 줄

 그가 서 있다.

 

 언젠가 새벽 가로등 불빛 아래

 소복이 내려와 준 그때의

 부족하고 모자란 마음이 아닌

 맑은 정신으로

 향기로움으로

 그를 맞이할 것이다

 

 삶은 그런 것이리라

 인연이 닿아 만나고 흩어지고 다시 만나고

 

 경이로운 시작과

 곧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지현 /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눈오는 날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독자감상 >

 

 겨울에 태어나 겨울을 사랑하는 한 여인이 겨울과 함박눈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생의 별리(別離)를 얘기하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면 그 설렘으로 몸살을 앓곤하지만, 그녀는 결코 경고망동도 허둥대지도 않는다.

 

 솜털처럼 가볍게 소리 없이 찾아와 아무 말 없이 떠나 갈 님을, 넉넉한 가슴으로 자신을 감싸 안아 줄 그님을 가슴 조이며 기다린다. 언제나 맑은 정신으로 향기로움으로 님을 맞이하려고 한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그가 나를 만나러 오는 길...’

 

 얼마나 보고 싶은 님인가. 얼마나 그리운 님인가.

 님은 오래 머무르지 않았기에 그 길은 맑고 청아한 한 여인의 못다한 정한(情恨)이 서린, 님을 만나는 '사랑의 최고 접점(接點)'이다.

 

 자연의 순환을 삶과 연결시키고, 경이로운 만남과 또 다시 떠나야 함을 예고하면서 그 끝은 아름다움으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얘기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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